사전의 뜻풀이

'동성애'와 '동성연애'

이운영(李云英) / 국립국어연구원

얼마 전 한 기관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이하 '표준'이라 함.)"에 실린 몇몇 표제어 뜻풀이에 대해 국립국어연구원의 의견을 요청해 온 적이 있다. 일부 표제어의 뜻풀이가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에 대한 국립국어연구원의 의견을 달라는 것이었고, 그 단어들 중에는 '동성애'와 '동성연애'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표준'에서는 이 단어들을 다음과 같이 뜻풀이하고 있다.

동성애 「명」 =동성연애.
    동성연애 「명」 같은 성(性)끼리 하는 연애. 즉 남자와 남자 사이, 또는 여자와 여자 사이에 하는 연애를 이른다. ≒ 동성애

이러한 뜻풀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동성연애'는 '동성애'를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므로 '동성연애'를 '동성애'의 속어로 규정해 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전의 뜻풀이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부딪히게 되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전의 뜻풀이는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사전 편찬자가 자신의 취향이나 호불호(好不好)에 따라서 사전의 용어를 뜻풀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위의 경우에 '표준'의 뜻풀이는 그야말로 '가치중립적'이다. 먼저 '연애'를 표제어로 올려 집필하였고 이에 맞추어 '동성연애'를 '같은 성끼리 하는 연애'로 뜻풀이하였다. 물론 '연애'에는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뜻이 전혀 없다. 이렇게 보면 '표준'의 뜻풀이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바로 이 점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즉, '동성연애'는 '동성애'를 비하하는 용어인데 이를 올바른 용어인 것처럼 표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은 사전의 뜻풀이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반하니까 무조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바로 '사회적 통념'이라는 또 다른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사회 일반에서 '동성애'라는 용어가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이에 반해 '동성연애'는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이러한 사실은 뜻풀이에 반영되어야 한다. 뜻풀이가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이 모든 용어에 대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그저 단어 자체의 뜻만 설명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이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 특정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 단어를 속어 또는 비하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규정해 주는 것이 진정한 '가치중립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 단어의 경우에는 '표준'의 현재 뜻풀이가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 사회 일반에서는 이 둘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쓰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통념을 반영하고 있는 '표준'의 뜻풀이는 진정으로 가치중립적이라 하겠다.
    언어는 흔히 유기체에 비유된다. 나서 자라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전 편찬자들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언어를 특정 시점에서 붙잡아 뜻풀이를 고정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사전은 편찬한 그 시점의 언어를 반영할 수밖에 없고 시간이 흘러 사전의 용어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자라고 소멸하면 사전도 그에 따라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위에서 살펴본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더 흐른 후 문제가 된 용어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뀐다면 사전의 뜻풀이 또한 그에 맞게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