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 쓰기

월드컵 대회의 열기 속에서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지난 6월 한 달은 월드컵 축구 대회를 치르느라 전 국민이 정신없이 보냈을 것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광화문 큰길이나 동네 골목길이나 "짝짝 짝 짝짝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대~한민국" 하는 구호와 '오, 필승 코리아' 노래가 들리고, 태극기와 붉은 티셔츠가 넘실대었다. 방송의 스포츠 보도 시간이나 경기에 관련한 프로그램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맘껏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우리 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나 개최일을 전후한 며칠간, 또는 폐막식이 끝난 후에 특집 형식으로 방송한 내용 중 귀에 띄는 몇몇 예를 발췌해 본 것이다.

(1) 한국이 폴란드에게 2:0으로 앞서 가고 있습니다.(6. 4.)
(2) 한국 팀의 승리가 홈 어드밴티지를 크게 활용했다는 그들의 말은 근거 없는 기우로 드러났습니다.(6. 23.)
(3) 히딩크 감독, 한국에 영구히 귀화할 것을 임명하노라.(6. 16.)
(4) 기본에 충실하고 학연, 지연 등의 고리를 끊고 실력 위주로 투명하게 선수들을 선발하며 원칙과 소신을 지킨 히딩크 감독의 경영 철학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6. 30.)
(5) 상대 편 골이 터지자 (우리) 인파 속에선 통한이 터져 나왔다.(6. 28.)
(6) 송종국 선수가 열렬한 크리스천이거든요.(6. 28.)
(7) 인제 '저의 나라' 하면 '붉은 악마' 생각할 거예요.(6. 30.)
(8)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아들(박지성 선수)을 달리는 차 안에서 불과 10여 분 간 해후하니 얼마나 아쉬웠겠는가.(7. 1.)

(1)의 경우 '한국이 폴란드'가 '한국 선수가 폴란드 선수'의 준말이 아니라면 '에'를 택함이 원칙이다. '에게'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 따위를 나타내는 체언 뒤에 붙는다.
    (2)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 '기우(杞憂)'인데 '근거 없는 걱정'이라는 말이 어색하다. 여기에서는 '주장으로'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3)은 일정한 지위나 임무를 맡기는 것이 아니니 '명하다'가 낫겠다.
    (4)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남의 바람직하지 않은 언행을 자신의 경계 자료로 삼을 때에 쓰이는 말임에 유의한다. 히딩크 감독이 택한 팀 운영 방식을 성공적인 것으로 판단하였으니 '본보기', '거울', '귀감'으로 바꾼다.
    (5)는 '몹시 원통함'을 뜻하니 '한탄하여 한숨을 쉬는' '탄식(歎息)'이나 '몹시 한탄하거나 탄식하는 소리'인 '탄성(歎聲/嘆聲)'이 낫겠다. 참고로 '탄성'은 '몹시 감탄하는 소리'라는 뜻으로도 쓰이므로 문맥에 따라 적절히 써야 할 것이다.
    (6)은 전혀 맞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신자에 대해서는 '믿음이 두텁고 성실하다'란 뜻의 '독실(篤實)한'이 더 잘 어울린다.
    (7)은 어떤 경우에도 쓰기 어려운 말이다. '나라'를 지칭하면서조차 '저의'를 쓴다면 4강 아니라 우승국이 된들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논할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소사대(以小事大)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시대에 우리나라에 대해 스스로 '소국(小國)' 운운한 데서 비롯된 말이 아닌가 한다.
    (8)의 '해후(邂逅)'는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날 때에나 쓰는 말이다. 아들이 외국에서 선수로서 뛰느라고, 또는 경기에 임하여 국내 타지에서 훈련받느라고 얼마간 부모와 떨어져 있다가 만난 것은 해후가 아니다. 수시로 전화나 편지를 이용하여 서로 소식을 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10여 분간 차 안에서 만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고 미리 약속하고 그리한 것이니 '해후'라는 말과는 더욱 멀어진다. 이 문장에서는 '만나니'로 고쳐야 맞다.

풍성한 말 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들이 몇몇 보였다. 아무래도 월드컵 대회의 열기 속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들뜬 나머지 그랬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