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의 이해

서정주의 시 '꽃밭의 독백'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 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山)돼지, 매[鷹]로 잡은 산(山)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門)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門) 열어라 꽃아. 문(門)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門) 열어라 꽃아. 문(門) 열어라 꽃아.
                <'꽃밭의 獨白―婆蘇 斷章', "新羅抄", 1961>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 '꽃밭의 독백(獨白)―사소(娑蘇) 단장(斷章)'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 수행을 간 일이 있는데, 이 글은 그 떠나기 전, 그의 집 꽃밭에서의 독백"이란 배경 설명이 붙어 있다. '사소' 공주는 "삼국유사"에서 선도산(仙桃山)(경주 부근의 산) 신모(神母)로 나타나고 있다. 이 시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물질적인 쾌락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권태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래를 부른다거나 말을 타고 달리고 사냥하는 일에 재미를 잃었고, 사냥하여 잡은 온갖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먹어도 맛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보통의 여자들은 상상하기 힘든 상류 사회의 온갖 특권을 누리는 여성임을 여기서 알 수 있다.
    그러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현세적인 쾌락이 아니다. 노래를 부른다면 그 노래가 구름을 넘은 높은 곳까지 도달하고, 말을 타고 바닷가에 간다면 바닷가를 넘어선 깊은 바다 속까지 이르는 것이다. 구름을 넘어선 더 높은 곳과 바닷가를 넘어선 더 깊은 곳을 추구하는 사소 공주에게는 온갖 사치스러운 놀이와 여흥이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물질적인 쾌락 이외에 도달하는 법을 모르는 자신을 제9∼10행에서는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치는/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로 말하여 그녀의 지상에서의 풍요로움은 아이의 단계로 비유된다. 제13행에서는 하늘의 '벼락'과 바다의 '해일'의 세례를 받더라도 지상이 아닌 저 너머의 세계에 도달하고 싶은 신비 체험에의 꿈을 노래하고 있다.

구름 / 벼락 /하늘 위
바닷가 / 해일 /바다 속
아이 / 성년식 /어른
무지의 단계 / 성년의 길 /새로운 자각의 단계
속세 / 문(門) /저 너머의 세상

일반적으로 성년식은 '분리→고통(상징적 죽음)→재생'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시에서 바로 그러한 정신적인 성숙을 요구하는 전환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상태가 아이의 단계라면 벼락과 해일의 고통스러운 시련을 통해서라도 어른의 세계, 또는 지상적인 풍요를 넘어선 저 너머의 신비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싶은 강한 욕구가 나타난다. 그 구체적인 열쇠는 '꽃'으로 표현되고 있다.
    꽃의 상징성은 광포한 힘, 잘 알려져 있는 힘 위에서의 승리를 말한다. 두 번째로는 바라보고, 냄새 맡고, 만져 봄에 의한 즐거움을 통해 우리의 미적 의식에 주어지는 순수한 무상의 존재라는 점이다. 형태, 색깔, 향기로 말해지는 꽃은 한 세계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이 시 제7행의 "꽃아. 아침마다 開闢하는 꽃아."에서 한 새로운 세계의 이미지를 아침에 열어 보여 준다는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개벽하는 꽃'에서 '개벽'이 그러하다.
    꽃은 식물의 완성 단계다. 그 뿌리는 땅속에, 잎과 꽃은 하늘을 향해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존재로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나무를 '우주수(宇宙樹)'라고도 한다. 즉 우주의 중심적 존재라는 뜻이다. 우주의 중심이 되는 식물에서도 가장 핵이 되는 꽃은 완성이자 중심을 상징한다. 그래서 '꽃이 핀다'는 것은 '우주의 중심이 열린다'는 뜻이 된다.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비밀은 아이의 정신 상태로는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꽃이 문을 열어 핀다는 것은 존재의 완성에 다가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꽃은 우주의 비밀, 성년의 비밀, 저 너머 세계의 비밀을 말해 줄 수 있는 신비주의의 면모를 띠게 된다.
    이 시에서는 꽃의 축소된 세계를 통해서 하늘과 바다 너머의 확대된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신비 체험의 길을 암시하고 있다. 즉 천지의 이치와 우주의 비밀에 도달하는 길은 멀고 깊이 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 마당에 핀 한 송이의 꽃을 통해서도 신비로운 저 너머의 세계에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또한 꽃은 여성적인 것이다.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인 동시에 순결함, 새로움의 상징이 된다. 그런 점에서 소녀에서 여인으로,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이르려는 어떤 갈망이 이 시에 잘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