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 속의 국어 오용 사례

"모순"

최혜원(崔惠媛) / 국립국어연구원

양귀자의 "모순(살림, 1998)"은 스물다섯 살의 젊은 여성 안진진의 사랑과 결혼을 중심으로 삶이란 모순투성이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작가가 그리는 생의 어두운 일면들을 통해 독자는 인생의 이면에 깔려 있는 허무함, 부조리, 암담함을 새삼스레 바라보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이 "모순" 속에 나와 있는 국어 오용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지난 어느 날, 그리도 간절하게 스스로를 향해 다짐했던 바대로 나는 이제 되어지는(→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안 진진이 아니었다. <60:6>
(2)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타인에 의해 한 번도 정확히 읽혀지지(→읽히지) 않은 텍스트였다. <74:11>
(3) 솔직히 말하면 지난날 이모 집에서 주리를 만난 이후 그 애는 다시 내 기억 속 저편 어딘가로 묻혀져(→묻혀) 버렸다. <154:2>

위의 예에서 밑줄 그은 부분은 모두 '되는', '읽히지', '묻혀' 등으로 고쳐야 한다. '되다', '잊히다', '묻히다' 등이 모두 피동의 뜻이 있어 여기에 '지다'가 다시 결합하게 되면 이중 피동의 형태를 띠게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은 구성이 된다.
    이 작품에서는 또한 다음과 같은 비표준어나 한글 맞춤법에 맞지 않은 표기도 발견된다.

(4) 여기저기 긁히고 우그러진 지프차에 높이 올라타서, 발에 채이고(→차이고) 손에 걸리는 먼지와 쓰레기들을 물리쳐 가 며 달리는 것까지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99:19>
(5) 추억 속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정에 다달았을(→다다랐을) 때 현실 속의 내 아버지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내 추억을 희롱했다. <247:2>
(6) 간간 고깃배가 떠 있고 고깃배 위로 뭉개구름(→뭉게구름) 몇 조각이 친구 하며 따라가는… <180:21>
(7) 저 혼자 흘러나온 혼자말(→혼잣말) 따위 나는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다. <9:6>

(4)의 '채이고'는 비표준어로 '차이고'나 '채고'로 고쳐야 한다. '어느 곳에 이르다'는 뜻의 동사 '다다르다'는 (5)번 문장에서와 같이 '다달았을'이라는 활용형이 성립하지 않는다. '다다랐을'이 제대로 된 형태이다. 근래 들어 우리말에서 [ㅔ]와 [ㅐ] 소리의 구분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러한 발음의 양상은 표기에도 영향을 미쳐 '찌게', '집개', '육계장'과 같은 잘못된 표기형을 양산한다. (5)의 '뭉개구름' 또한 이러한 발음의 혼동에 영향을 받은 표기로 보인다. 고유어 합성어 '혼잣말'은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표기에도 이를 반영하여 사이시옷을 써 주어야 한다.
    문장의 부자연스러운 연결도 이 소설을 읽어 나가는 데에 방해되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8) 고기를 더 시키려면 있는 대로 고함을 질러야 함이 너무도 당연하던 거기에서는 비록 전쟁터 같긴 했어도 지루하지 는 않았다. <31:13>
(9) 이모가 유행가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주리가 어려서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 이모가 만사 젖혀 놓고 열심히 주 리 따라서 같이 배운 것도 모두 유행가 때문이었다. <125:17>

(8)번 문장이 좀 더 자연스러워지려면 고함을 질러야 함이'를 '고함을 질러야 하는 게' 정도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 또한 (9)번 예의 뒤 문장에서 '때문이었다'와 호응하는 요소는 앞뒤 문장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유행가 때문이었다'를 '유행가였다'로 수정하면 문장의 호응 관계가 자연스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