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해요체와 벽보

허철구(許喆九) / 창원대학교

청자를 높이는 상대 높임법 가운데 해요체가 있다. 이 높임법은 합쇼체 즉 '-습니다'와 달리 격식적인 자리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일례로 군대에서 이 높임법이 금지의 대상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곧 합쇼체는 격식적인 말인데 비해 해요체는 비격식적인 말로 분류된다. 그러나 대신 그만큼 인간적인 거리가 가까운 경우에 쓰이므로 합쇼체보다는 친근감이 더하다는 특징이 있다.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의 사용 빈도가 좀 더 높다는 점에서 여성적인 화법이라고도 할 만하다.
    이 높임법은 그동안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복잡한 등급의 높임법을 어렵게 가르칠 것 없이 반말인 해체와 해요체만 가르치면 충분하다는 반 농담 섞인 이야기가 들릴 정도이다. 이 해요체의 확산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현상을 대학가에서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대학가의 벽보는 높임법을 사용할 경우에 대체로 합쇼체가 일반적이었다. 아무래도 벽보가 지니는 격식성 때문에 해요체를 사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대학가의 벽보나 현수막 문구를 보면 이러한 통념과 달리 해요체의 등장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여성의 날은) 공동의 실천 의지를 모아 내는 단결과 연대의 장이에요.
△△△에 오신 걸 환영해요.
축구와 함께 2002학년을 열어 갈 신입 단원을 모집해요.
대학 생활에 새로운 느낌을 줄 ○○예술단에서 자신의 끼를 발휘해요.

이런 예들은 학생들의 언어 사용이 분명 이전 세대와는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전에는 다소 격식적인 경우로 여겨지던 분야에까지 물밀 듯이 해요체의 용법이 확장되고 그만큼 합쇼체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위의 예들이 여성 특유의 문체이거나 환영 인사나 동아리 초대처럼 가벼운 주제의 이야기이므로 해요체가 쓰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의 예처럼 ―이전 같으면 강하고 전투적인 어조로 표현될 주제에조차 ―해요체가 사용되고 있어 우리의 주목을 끈다.

미국 반대 미국 상품 불매 팔천 학우 우리가 해요.
성폭력 규제 학칙 개정 우리가 해내요.
한총련 대의원 우리 대표자 우리가 지켜요.

근래 남학생들이 여성화되어 가고 있다고도 하는데 대학가의 화법이 이와 같이 친근하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뀌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생각과 달리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즉 해요체는 해체에 '요'를 덧붙인 것이어서 아무래도 합쇼체에 비하여 상대를 높이는 정도가 덜한데 이 때문에 위 세대는 이 해요체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은 언어 예절도 모르는 '버릇없는' 젊은이로 낙인찍히곤 한다. 그러나 해요체의 최근 사용 실태를 보면 해요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