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어의 이해

'게눈숨듯이'

전수태(田秀泰) / 국립국어연구원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개나리, 진달래가 중국에서 날아온 짙은 황사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금년 봄에는 모래 바람이 예년보다 더 심할 것이라고 한다. 요 며칠 사이 평양 시민도 서울 시민 못지않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지난번에 이어 우리에게 생소한 북한 말을 소개하기로 한다.

'강좌장'은 '고등 교육 기관이나 간부 양성 기관에서 강좌 사업을 책임진 교원'을 말한다. 우리의 경우로 말하면 대학의 '학과장'에 해당한다. 우리가 대체로 초·중·고 선생님과 대학 선생님을 구분하여 '교사'와 '교수'로 부르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흔히 이를 통칭하여 '교원'이라고 한다. "강좌장동지, 대학으로 갈 동무들을 정렬시키겠습니다."<"내가 설 자리", 232>와 같이 쓰인다.
    '타발하다'는 '무엇에 대해 불만스럽게 여기면서 투덜거리다'의 뜻이다. 비슷한 단어로 '타박하다'가 있는데 이는 남·북한 사전에 모두 올라 있다. "그런데, 일부 일군들이, 더욱이 군사복무를 해봤다는 일군들까지 제대 군관들을 홀시하고 실무가 부족하다고 타발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까지 마음대로 희롱할 수가 있겠습니까?"<"고향으로 온 련대장", 417>와 같이 쓰이는 말이다.

또, 아래와 같은 관용구도 우리에겐 낯선 말이다.

'게눈숨듯이'는 북한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으나 문맥으로 미루어 보아 '흔적도 없이'의 뜻이다. 음식을 허겁지겁 빨리 먹어 치우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우리의 '게 눈 감추듯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말이다. "사각모를 제껴쓰구서 내노라구 우쭐렁거리던 옛꼴은 게눈숨듯이 싹 없어졌소."<"내 나라", 249>와 같은 예가 있다. 참고로 말하면 '내노라'는 북한 사전에는 나오지 않으나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내로라'라고 해야 한다.
    '날씨가 못되다'는 역시 북한 사전에는 나오지 않으나 '날씨가 궂다' 또는 '날씨가 좋지 않다'의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유격대에선 한점의 불찌만 있으면 비록 날씨가 못돼서 눈비가 오고 바람이 사나와도 기어이 모닥불을 일쿠고 종당에서 불무지를 만들고야맙니다."<"새 정권의 탄생", 156>처럼 쓰인다. 여기에서 북한 사전에 따르면 '불찌'는 '불티'나 '불똥'이고 '불씨'는 다른 올림말로 올라 있다. '불무지'의 '무지'는 '무더기' 또는 '더미'의 의미이다.
    '독틈에도 用手(또는 容手)가 있다'는 '잘못 움직이다가는 독을 깨칠 것 같은 비좁은 독틈에도 움직여 빠지거나 비비고 나갈 수 있는 융통성과 틈이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하게 발음되는 것으로 남쪽에는 '독 틈에도 용소(龍沼)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독 틈에도 깊은 물웅덩이가 있다 함이니, 무슨 일에든지 남을 속이려는 수작들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어서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비서동무, … 독틈에도 용수가 있다구. … 양보 좀 하시우."<"심장에 남는 사람", 134>처럼 쓰인다.

좋은 계절이다. 남·북한의 자질구레한 모든 문제가 '게눈숨듯이'(?) 사라지고 봄날의 눈석임처럼 잘 풀려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