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찾아서

'호호베니'를 칠한 여자와 '세비로' 양복을 입은 남자

양명희(梁明姬) / 국립국어연구원

20세기 전반기는 일제 강점기(强占期)이기도 하다. 당연히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소설에 일본어 외래어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의 일본도 신문물을 서구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을 거친 서구의 외래어도 소설에 많이 등장한다. 다음은 염상섭의 20세기 전반기 소설에 등장하는 당시 일본어 외래어의 예이다.

(1) 자긔「가가리」의주임이라고 꿈여대는 모양인듯도하다. <無絃琴, 1934> かかり(係), '계'.
(2) 「구쓰」를신으랴 <闇夜, 1922> くつ(靴), '구두'.
(3) 하얀얼굴에 두뺨만「호호베니」를 칠한듯한것이 고웁기도하거니와 <無絃琴(第二回), 1934> ほおべに(頰紅), '볼연지'.
(4) 우울증이란 다른원인도 만켓지만 무니의친구를 그러케일흔데도 원인이잇섯든가십허요. <無絃琴, 1934> むに(無二), '둘도 없다'는 뜻.
(5) 「규-지」가 와서 찬수를 불러내간다. <無絃琴, 1934> きゅうじ(給仕), '심부름 꾼'.
(6) 굴뚝 속에서 빠져나온 연통 소지꾼 같은 아들을 얼싸안듯이 껄어들이며 <엉덩이에 남 은 발자욱, 1948> そうじ(掃除)+꾼, '청소부'
(7) 저 사조ㅅ방을 내주구 차차 방을 구해 보는게 어때요? <解放의 아들, 1951> 사 (四)+じよ(疊)+방(房).

밑줄 친 일본어는 지금은 국어 순화 운동으로 거의 쓰이고 있지 않은 예들이다. 맨 끝 예의 '사조ㅅ방'은 아주 작은, 일본의 다다미방을 말하는데 '조'는 'じよ(疊)'로 일본의 다다미를 세는 단위이다. 이 외에도 우리 귀에 익은 '벤도(べんとう)갑', '아사(あさ, 麻)', '몸페(もんぺ, 현행 표기로는 '몸뻬'임)' 등도 염상섭의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서구의 외래어가 일본을 통해 온 예들이다.

(8) 이런데두 이오나! <檢事局待合室, 1925> シヤン, '미인'. 독일어 'schön(아름다 운)'에서 말.
(9) 紺色세루치마우에 <金半指, 1924> セル, '서지(모직물의 한 종류)'. 영어의 'serge' 에서 온 말.
(10) 고뽀에 술을 들먹히 딸는다. <그 初期, 1948> カッフ, '컵'. 네덜란드어 cop에서 온 말.
(11) 도서관가는데, 별안간세비로양복 내입겟나 <女客, 1927> せびろ(背), '신사복'. 'civil cloth'에서 왔다는 해석과 외국 상표라는 해석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음.
(12) 한카치에 손을 씨으면서 올라온 은영이가 <立夏의 節, 1950> ハンカチ, '손수건'. 영어의 'handkerchief'에서 온 말.
(13) 현대뎍「인텔리겐챠」에 불과하이그려 <썩은 胡桃, 1929> インテリゲンチア, '지식 층'. 러시아 어의 'intelligentsia'에서 온 말.

'샨', '세루', '고뽀'는 일본을 통해서 온 서구 외래어임이 분명하나 '세비로'는 그 어원이 확실하지 않다. '한카치' 역시 일본을 통해 들어왔으며 일본어에서 '한카치'는 '한카치프'의 준말이기도 하다. '인텔리겐챠'는 일본을 통해 들어온 러시아 외래어로, 지금은 '인텔리겐치아'로 표기한다.
    이 외에도 외래어는 아주 많이 발견된다. 물론 지금의 출판물과 비교하면 그 수가 많지 않으나 이들 외래어를 통해 당시의 외래어 표기 방식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