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의 이해

김소월의'초혼(招魂)'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 중(虛空中)에 헤여진 이름이어!
불너도 주인(主人) 업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心中)에 남아 잇는 말 한 마듸는
내 마자 하지 못 하엿구나.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니 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러저 나가 안즌 산(山) 우헤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
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눌과  사이가 넘우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여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사랑하든 그 사람이어!
<'초혼(招魂)', "진달내", 1939년>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은 문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서 그의 시 '초혼(招魂)' 또한 절창으로 평가되어 왔다. '초혼[復: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소리]'의 행위는 지금은 보기 드물지만 상례(喪禮)의 예법으로서 이민수 편역의 "관혼상제(冠婚喪祭)"(을유문화사, 1987)에는 "죽은 사람이 입던 웃옷을 가지고 앞 처마로 해서 지붕 가운데에 올라가, 왼손으로는 목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허리를 잡아 북쪽을 바라보고, '모복(某復)'이라고 세 번 길게 부른다. 모(某)란 죽은 사람의 생시에 쓰던 이름을 말한다. 이렇게 하고서 옷을 가지고 앞으로 해서 내려와 광주리에 담아서 시체 위에 덮고 남녀가 수없이 가슴을 치며 곡한다. 지붕 위에 올라가는 것은, 혼이란 위에 있는 때문이요,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이 혼이 다시 체백(體魄)에 합하도록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으면 정말 죽은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초혼의 의례가 김소월의 시에서는 다소 달리 나타난다. 공통점은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인데, 차이점은 시에서는 지붕이 아닌 산에 올라가서 부르고, 세 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또는 돌이 될 때까지 부르는 행위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유교나 도교에서 죽음은 혼백이 육체를 벗어나 흩어진 것이라고 본다. 그 기(氣)가 뭉쳐지면 산 것이고 흩어지면 죽은 것이라고 보는데 그런 이미지가 이 시에 잘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이 시는 화자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 이름은 부서지고 깨어지고 가루가 되어 사라진 이름이다. 어떤 실체가 폭탄에 맞은 듯 물체가 부서지고 헤어지고 임자도 없는 이름이 되었음을 말하면서 사람의 혼백이 흩어짐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이미 죽어 버린 임이면서 혼이 돌아오면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므로 초혼이 행해지는 동안은 양쪽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즉 부르고 있는 대상이 실재하면서 현존하지 않는다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제2연을 보면 화자가 부르는 그 사람을 '현존하는 부재(不在)'라고 볼 때, 자책과 함께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을 하지 못한 한(恨)이 화자의 마음에 남아 있다. 제3연에 오면 앞에서의 뜨거운 열정이 차가워지면서 구체적인 거리감이 나타난다. 이 시에서 부재하는 임과 현존하는 화자의 대립된 상태가 '붉은 해', '사슴', '산' 등의 시간과 공간 상태로 확장되어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제4연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에서는 화자와 임과의 공간 거리가 확대되며 부르는 자와 대상 사이의 단절을 느끼게 된다. 일단 부르면 응답이 있게 마련인데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오지 않으니까 화자가 점점 단절감에 휩싸여 어조(tone)가 바뀌게 된다. 그때 '희망/절망'의 감정이 교차한다. 그래서 격렬했던 감정이 점점 냉각되어 제5연에 와서는 마비, 망각, 냉각 상태로 되어 생동감이 넘쳐흐르던 화자가 '돌'로 변해 가는 심리의 변화가 보인다. 처음부터 돌같이 차가운 태도는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화자의 '태도의 변화'에 따른 '생/사'의 모순이 드러난다. '생명/마비', '희망/절망', '획득/상실', '뜨거움/차거움' 등이 교차되는 순간이다.
    제5연에 나타난 망부석(望夫石) 이미지는 흔히 여인이 떠난 남편을 그리다가 돌로 변했다는 전설과 관련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박제상의 아내 이야기이다. 박제상은 신라 제19대 눌지왕의 신하로서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의 아우 보해를 구하고 돌아와서는 곧바로 왜국에 잡혀간 왕의 아우 미해를 구하려고 다시 왜국으로 가자,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의 아내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를 길 없어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鵄述嶺) 고개 위에 올라가 바다 건너 아득히 왜국을 바라보며 힘이 다하도록 통곡하다 그대로 죽어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망부석 이미지는 그 의미가 비록 임은 죽었어도 그 임에 대한 애정이 영원불변하다는 식의 유교적 정절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볼 때 죽은 연인에 대한 원한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즉 화자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짓밟아 버린 연인의 몰인정한 행위(죽음)에 대해 원한을 품을 수 있다.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와 같이 잠재적인 증오의 감정을 오히려 애정의 감정으로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려는 정신 현상을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 불렀다. 그렇게 볼 때 제5연에서도 연인에 대한 원망이 사랑의 영원성이라는 형태로 반동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제1연에서부터 제5연까지 문맥에 한정된 대립의 쌍들은 '좌절/미련', '자책/미련', '희망/절망', '생명/마비', '획득/상실' 등이다. 그것들은 시인의 '부른다'는 행위와 거리감으로 대비되고 있다. 즉 부르면 부를수록 연인과 화자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지고 확대된다. 부른다는 시인의 행위가 처음에는 뜨거운 육성으로 표현되더니 지속될수록 가라앉고 냉각되어 어조(tone)상의 패러독스(paradox: 논리적으로는 모순이지만 진리를 나타내는 수사상의 말) 현상이 발생한다. 화자가 의식한 것은 아니더라도 응답을 못할 부재자(不在者)와 부를 수 있는 존재자(存在者) 간의 모순이 성립된다. 대답이 있으면 부른다는 행위가 끊어지니까 대답이 없고, 거리가 먼 것을 강조하면 할수록 부른다는 행위가 부담 능력이 커지므로 '부르다/대답이 없다', '희망/절망', '삶/죽음' 들의 대립을 통해 결별과 그리움이 주는, 멀고도 깊은 복합적 감정이 함축되어서 듣는 이의 감동을 더욱 깊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