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언어의 이해

너無너無 사랑한Day(?)

박용찬(朴龍燦) / 국립국어연구원

인터넷상에서는 줄인 말을 사용하거나(첨←처음, 셤←시험, 멜←메일),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거나(시러←싫어, 우녕자←운영자), 비표준어를 쓰는(오널←오늘, 보조사 '여'←'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최근에는 각종 기호나 부호를 사용한, 암호와 같은 표현들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기성세대는 통신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엔세대가 무슨 말을 주고받는 것인지 거의 이해하기 힘들게 되었고 심지어 엔세대 사이에서조차 의사소통이 쉽지 않게 되었다. 통신 언어가 점점 더 정체 불명의 언어로 변질되어 몇몇 엔세대(또는 네티즌)만이 알아볼 수 있는, '외계 언어'와 다름없게 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특히, 우리말을 한글이 아닌, 다른 문자의 글자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경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말을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다른 문자의 글자로 대체한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1) ᄀ. 2(이) 사람, 20000(이만)/ 10002(많이)/ 9(그) 여자, 8282(빨리빨리)
ᄂ. n(앤←애인)

(1)은 우리말을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아라비아 숫자나 영어 알파벳(로마자)으로 대체한 예이다. (1ᄀ)은 우리말을 아라비아 숫자로 대체한 예로 '2'와 '20000'은 각각 지시 관형사 '이'와 부사 '이만'을, '1002'는 부사 '많이'의 실제 소리인 '마니'를 소리가 같은 아라비아 숫자로 각각 바꾸어 적은 예이고 (1ᄀ)의 '9'와 '8282'는 각각 지시 관형사 '그'의 비표준어인 '구'와 부사 '빨리빨리'를 소리가 비슷한 아라비아 숫자로 바꾸어 적은 예이다. 반면 (2)의 'n'은 '앤'을 소리가 비슷한 영어 알파벳으로 대체한 예인데 여기에서 '앤'은 '애인'이 줄어든 말이다.
    (2)의 예들은 (1)과 달리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을 다른 문자의 글자로 대체한 예이다.

(2) ᄀ. 밥5(바보), 9럼(그럼), 쪽8리다(쪽팔리다)/ 하2(하이)
ᄂ. p보다(피보다), d지다(디지다←뒈지다)/ 사랑한Day(사랑한데이←사랑한다)
ᄃ. 너無너無(너무너무)

(2ᄀ)의 '밥5'는 '바보'를 '밥오'로 재분석한 뒤 뒷부분인 '오'를 아라비아 숫자 '5'로, '9럼'은 '그럼'의 비표준어 '구럼'에서 앞부분 '구'를 '9'로, '쪽8리다'는 속어 '쪽팔리다'에서 그 일부분인 '팔'을 '8'로 각각 바꾸어 적은 예이다. 그리고 (2ᄀ)의 '하2'도 우리말은 아니지만 영어 '하이(hi)'에서 뒷부분 '이'를 '2'로 바꾸어 적은 예이다. (2ᄂ)의 'p보다'는 '피를 보다'라는 관용구에서, 'd지다'는 '죽다'의 속어인 '뒈지다'의 비표준어인 '디지다'에서 각각 그 앞부분을 소리가 같은 영어 알파벳으로 바꾸어 적은 예이며 '사랑한Day'는 '사랑한다'의 경상도 방언형 '사랑한데이'에서 뒷부분 '데이'를 소리가 같은 영어 단어 day로 바꾸어 적은 예이다. 끝으로 (2ᄃ)의 '너無너無'는 '너무너무'에서 두 개의 '무'를 소리가 같은 한자 '無'로 바꾸어 적었다.
    이렇게 우리말을 다른 문자의 글자로 대체할 때에는 대부분 소리를 기준으로 하기도 하지만 다음 예에서처럼 의미를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3) 냉무/냉無(내용 없음), 나무욜(나무요일←목요일), 송방(노래방)

(3)의 '냉무'는 '내용 없음'에서 '없음'을 의미가 같은 한자(어) '무(無)'로, '나무욜'은 '목요일'에서 '목(木)'을 의미가 같은 고유어 '나무'로 각각 바꾸어 적은 예이다. 여기에서 '냉'과 '욜'은 각각 '내용'과 '요일'이 줄어든 말이다. '송방' 또한 '노래방'에서 '노래'를 같은 의미가 있는 영어 '송(song)'으로 바꾸어 적은 예이다.
    이렇게 우리말을 한글이 아닌, 다른 문자의 글자로 대체하여 쓴 예들 가운데 몇몇은 엔세대의 재치와 창의력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애교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말장난의 하나로 언어유희에 가깝다. 이 때문에 기성세대에게 통신 언어는 외계 언어로 보일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와 엔세대 간 또는 엔세대 간에도 의사소통의 장벽이 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