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순화

법령문의 순화(6)

김문오(金文五) / 국립국어연구원

법령문이 반듯한 문장 구조로 작성되어 있지 않으면, 법령의 해석과 집행에 불편함이 따를 것이고 선진 법률 문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번 호에는 법령문 중에서 대등 접속어('또는', '및', '-거나' 등)로써 둘 이상의 어구나 절(節)이 연결될 때 짜임새가 반듯하지 못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處分의 能力 또는 權限없는 者가 賃貸借를 하는 境遇에는 그 賃貸借는 다음 各號의 期間을 넘지 못한다.
1. 植木, 採鹽 또는 石造, 石灰造, 煉瓦造 및 이와 類似한 建築을 目的으로 한 土地의 賃貸借는 10年 <후략>
<민법 제619조>

처분할 능력이나 권한이 없는 사람이 임대차를 하는 경우에 그 임대차는 다음 각 호의 기간을 넘지 못한다.
1. 식목, 채염, 건축(돌, 석회, 벽돌 등으로 된 구조의 건축)을 목적으로 한 토지의 임대차는 10년

"1. 식목, 채염 또는 석조, 석회조, 연와조 및 이와 유사한 건축"에서 '또는'이 연결할 대상은 '식목', '채염', '건축' 등의 셋이다. 그런데 '식목', '채염' 등과는 달리, '건축'의 앞에는 상당히 긴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 열거되는 표현들 간의 구조적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식목, 채염, 건축(돌, 석회, 벽돌 등으로 된 구조의 건축)'이라고 고치든지, '식목, 채염, 건축(석조 건축, 석회조 건축, 연와조(煉瓦造) 건축, 기타 이와 유사한 재료로 조성된 건축)'이라고 고칠 수 있는데, 전자가 간결하여 더 낫다.

(2)

賃貸人이 賃貸借期間滿了전 6月부터 1月까지에 賃借人에 대하여 更新拒絶의 통지 또는 條件을 變更하지 아니하면 更新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期間이 滿了된 때에 前賃貸借와 同一한 條件으로 다시 賃貸借한 것으로 본다. 賃借人이 賃貸借期間滿了전 1月까지 통지하지 아니한 때에도 또한 같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 제1항>

임대인이 임대차 기간 만료 전 6개월부터 1개월까지 임차인에 대하여 갱신을 거절한다는 통지 또는 조건을 변경하지 아니하면 갱신하지 아니한다는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에 전(前)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 만료 전 1개월까지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갱신거절의 통지 또는 조건을 변경하지 아니하면 갱신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통지'라는 표현은 'A의 통지 또는 B의 통지'로 압축하여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A 부분은 명사구 형식, B 부분은 명사절 형식으로 되어 있어 균형이 맞지 않는다. 따라서 A, B 모두 명사절로 바꾸는 것이 낫다.
한편 '~까지에'는 '~까지' 또는 '~까지의 기간 (중)에'라고 고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니한 때'보다는 '아니한 경우'나 '아니하였을 때'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3)

"주차"라 함은 차가 승객을 기다리거나 화물을 싣거나 고장 그밖의 사유로 인하여 계속하여 정지하거나 또는 그 차의 운전자가 그 차로부터 떠나서 즉시 운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도로교통법 제2조 제17호>

(1안) '주차'는 차의 운전자가 승객을 기다리거나 화물을 싣기 위하여 계속하여 차를 세워 두고 있거나, 차가 고장이 나거나 그밖의 사유로 말미암아 계속하여 정지해 있는 상태, 또는 그 차의 운전자가 그 차로부터 떠나 있어서 즉시 운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2안) '주차'는 차가 고장이 나거나 그밖의 사유로 말미암아 계속하여 정지해 있는 상태, 차의 운전자가 승객을 기다리거나 화물을 싣기 위하여 계속하여 차를 세워 두고 있는 상태, 또는 그 차의 운전자가 그 차로부터 떠나 있어서 즉시 운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위 법조문의 뼈대만 추려서 표현하면 "주차란 A의 사유로 인하여 (차가) 계속하여 정지한 상태 또는 B하여서 즉시 (차를) 운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처럼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A 부분에서는 대등 접속문의 형평성이 깨어져 있다. 즉, '차가 승객을 기다리거나 화물을 싣거나'와 '고장 그 밖의 사유'라는 두 어구가 'A'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선택형 어미 '-거나'의 앞에는 동사구(화물을 싣-)를 쓰고 있고, '-거나'의 뒤에는 명사구('고장, 그 밖의 사유')를 쓰고 있어 대등 접속되는 두 단위의 형식상의 형평성이 깨어져 있다. 따라서 '-거나' 앞뒤의 형식을 모두 동사구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A 부분에서 주술 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즉, '승객을 기다리거나 화물을 싣다'의 주어는 '운전자'이고, '고장이 나다'의 주어는 '차'여서 양자의 주어가 상이한데도 '차가'만 주어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주어를 각각 밝혀 써 주어야 한다. 원래 법조문의 어순을 유지한 채로 수정한 것이 (1안)이고, 어순을 바꾸어 '차'를 주어로 하는 절(節)을 앞에 두고 '운전자'를 주어로 하는 절(節)을 뒤에 둔 것이 (2안)이다.
한편 '정지하다'는 '순간(瞬間) 동사'이므로 위 문맥에서는 '정지하다'가 아니라 '정지해 있다'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법령문은 여러 공문서를 작성하는 데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그러므로 입법 기관에서 법령문을 짜임새가 반듯하면서도 이해하기 쉽도록 다듬어서 공포하면, 이를 통해 문장 바로 쓰기 운동이 사회 각 부문에 더욱 확산될 것이다. 반듯한 법령문은 국가의 위신을 세워 줄 뿐만 아니라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의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 일반 국민들도 법령문 바로 쓰기, 더 나아가 문장 바로 쓰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