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 속의 국어 오용 사례

'봉순이 언니'

최혜원(崔惠媛) / 국립국어연구원

공지영의 작품 "봉순이 언니"는 서울 아현동 언저리를 배경으로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짱아'가 식모인 '봉순이 언니'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눈떠 가는 과정을 그려 낸 소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시작된 이듬해인 1998년 4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독자들에게 당시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새록새록 피어나는 '희망'을 부둥켜안게 하였다.
    또한 1960~70년대 서울의 풍경을 예민하면서 촘촘하게 써 내려간 이 소설에서 우리는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엿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가끔씩 눈에 띄는 잘못된 어법은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 비표준어의 사용

(1) 일이야 억척스레 잘하니까 누가 꼬셔서(→꼬여서) 데려다가 부려먹겠지. <9 : 12>
(2) 나는 아버지가 신성일보다 잘생겼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고, 그런 아버지에게 내가 너무 야멸차게(→야멸치게) 대한 것이 좀 후회도 되었다. <37 : 3>
(3) 아버지는 여전히 봉순이 언니의 품에 안겨 있는 내 졸리운(→졸린) 궁둥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41 : 16>

위의 예들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알고 보면 국어사전에서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 비표준 형태들이다.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서 자기 생각대로 끌다'의 뜻으로 쓰이는 말은 '꼬시다'가 아니라 '꼬이다', '꾀다'가 맞다. 보통의 구어에서는 '태도가 차고 야무지다'는 의미로 '야멸차다'란 말을 많이 쓰지만 '야멸차다'는 '야멸치다'의 비표준어이다. '졸리다'가 '마렵다'에 이끌려 '졸립다', '졸렵다'의 형태로 활용하여 쓰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두 비표준어이다.

(4) 이제 드디어! 나는 그들에게 끼여들게(→끼어들게) 된 것이었다. <50 : 22>

'끼어들다'는 자주 '끼여들다'와 혼동하여 쓰는데, 이는 발음이 [끼어들다]로 또는 [끼여들다]로 나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발음에 잘못 이끌려 '끼여들다'로 적는데,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서다'란 뜻으로 능동적인 행동을 가리킬 때에는 '끼어들다'로 써야 한다. '끼다'의 피동사 '끼이다'가 쓰인 '끼여들다'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이 그렇게 되었을 때 쓰는 말이므로 위 문장에서는 맞지 않다.

(5) 이웃집 할머니는 우리가 새로 산 텔레비전만 틀어드리면 밤이라도 샐(→새울)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83 : 8>

'새다'는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로 '밤이 새다', '날이 새다' 등의 형태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밤'이 목적어로 오기 때문에 타동사 '새우다'로 바꿔 써야 한다.


◆ 한글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6)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그날 밤, 함께 있으면 언니가 멋적어할까(→멋쩍어할까) 봐 나는 안방에서 일부러 늦도록 TV를 보았다. <91 : 16>

'한글 맞춤법' 제54항에서는 '적다[少]'의 뜻이 없이, [쩍다]로 발음되는 경우는 '쩍다'로 적도록 하고 있다. '적다[少]'의 의미가 살아 있을 때에는 '맛적다(맛이 적어 싱겁다)'와 같이 '적다'를 살려 적어야 하지만 '멋쩍다'는 '객쩍다', '겸연쩍다' 등처럼 '적다[少]'의 의미가 유지되고 있지 않아 '멋적다'로 적지 말아야 한다.


◆ 단어의 잘못된 선택

(7) 소리는 안방의 누런 문창호지를 너머(→넘어) 우리 방까지 날아왔다. <33 : 11>

'너머'는 '높이나 경계로 가로막은 사물의 저쪽. 또는 그 공간'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로, '고개 너머, 저 너머'에서처럼 공간이나 공간의 위치를 나타낸다. 이에 반해 '넘어'는 동사 '넘다'에 어미 '-어'가 연결된 것으로 '국경을 넘어 갔다, 산을 넘어 집으로 갔다'에서처럼 동작을 나타낸다. 위 문장에서는 '문창호지'를 목적어로 취하는 동사가 와야 하기 때문에 '문창호지를 너머'가 아니라 '문창호지를 넘어'로 써야 한다.

(8) 정식 학교는 아니지만 글씨도 배워 주고(→가르치고) 옷 만드는 법도 배워 주는(→가르치는) 그런 학교. <43 : 2>

요즘 들어 '가르치다'의 의미로 '배워 주다'라는 말을 쓰는 것을 흔히 듣는다. 그러나 '배우다'와 결합한 보조 동사 '주다'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배우는 행위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인 이상 '배워 주다'란 표현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