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찾아서

뭐 하는 사람들? -안잠자기, 아이보개-

양명희(梁明姬) / 국립국어연구원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뜻있는 사람들이 옛 책에서 우리말을 찾아내 알리지만 그 말을 다시 살려 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20세기 전반기의 소설을 꺼내 읽다 보면 지금과 다른 표기와 띄어쓰기 때문에 같은 줄을 두 번, 세 번씩 읽기도 한다. 거기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듣도 보도 못한 어휘들은 20세기 전반기가 이제 먼 과거가 되었음을 깨우친다. 그런데 그 낯선 어휘들은 국어사전에 버젓이 올라 있는 경우가 많다.(여기 인용된 소설들은 모두 염상섭의 1920년대~1950년대 작품이다. 인용문은 발표 당시의 원문대로 옮겼다.)

(1) 新婚한젊은부부가 同寢하지안는것도 疑心이려니와 요사이 내몸이 수상적어하는貌樣이엇습니다. 間或 順伊나 안잠재기가 「왜 요섀는 나리가 書齋에만 들어안즈셧서요.」하거나 <除夜, 1922>
(2) 지금 마루에서 뒤주에 쌀을퍼붓고잇는 안잭이는 물론이려니와 알에ㅅ방에서 연애 화투을 찰삭어리고안젓는 동생인지하는것도 그래력은 도모지모른다. <니즐수업는사람들, 1924>

'안잠재기, 안잭이'로 표기된 이 어휘는 국어사전에 '안잠자기'로 올라 있다. 사전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서 먹고 자며 그 집의 일을 도와주는 일. 또는 그런 여자'로 풀이되어 있는데 요즘은 이런 사람을 '가정부'라고 지칭한다. 요즘 '가정부'는 꼭 집에서 먹고 자는 경우에만 사용되는 것 같지 않은데 사전에는 '일정한 보수를 받고 집안일을 해 주는 여자'로 풀이되어 있다.

(3) 지금 웬만한 집에서는 모두들 일녀를 식모로 데려다 쓰는데 <解放의 아들, 1951>

'안잠자기'와 비슷한 뜻으로 '식모(食母)'라는 말도 쓰였는데 낮추는 의미가 짙어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다.(사전에는 '남의 집에 고용되어 주로 부엌일을 맡아 하는 여자'로 풀이되어 있음) '식모'와 비슷한 뜻의 단어로 당시에는 '밥에미'가 사용된 듯한데 국어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4) 본마누라를 밥에미 같이 부려먹고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1948>
(5) 조선사람의성명이 적어도 일본텬디안에서는 언제든지 말성거리가 되고 비웃음을밧는 것은 장마 에 곰팡서는것이나 달을것이업는노릇이지만 창길이가 이러케지 밥에미나 어린아이들에게 모욕을 당하야본일은업섯다 <宿泊記, 1928>

요즘은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 아이를 돌봐 주는 사람을 집에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 대한 지칭어가 특별히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보모'라는 말이 있기는 하나 잘 안 쓰이고,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베이비시터'라는 외래어가 있으나 '베이비시터'는 전문 직업인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다.

(6) 단 세식구가 아이보기까지 두고 살던 사람을 이것 저것 시키기가 거북하였다. <해방의 아들, 1951>

'아이보기'는 '아이를 돌보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의 뜻으로 국어사전에는 '아이보개'가 표준어로 올라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단어일지 모르나 박경리나 한수산의 소설에도 '애보개('아이보개'의 준말)'가 나온다.
    그 밖에 '수모(手母), 침모(針母), 뭇구리쟁이(→무꾸리쟁이), 校直이(→교지기), 기마순사(騎馬巡査), 服裝巡査, 看護婦(→간호사)' 들이 염상섭의 20세기 전반기 소설에 등장하는데 이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