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성어를 찾아서

오비이락(烏飛梨落)

이준석(李浚碩) / 국립국어연구원

'고사 성어(故事成語)'란 유래가 있는 관용적인 말을 말함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고사 성어들은 중국의 고사(故事)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말들이다. 또 대개는 넉 자의 한자로 구성되어서 '사자 성어(四字成語)'라고도 한다. 그런데 고사 성어라고 해서 반드시 중국에서 유래한 사자 성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세 자의 단어이거나 또는 다섯 자 이상의 문장 형태로 된 성어들도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완벽(完璧)'이나 '모순(矛盾)', '농단(壟斷)', '사족(蛇足)', '퇴고(推敲)' 등은 모두 두 음절의 단어이나 고전에서 그 고사(故事)를 찾을 수 있으므로 일종의 고사 성어(故事成語)이며, 또 흔히 쓰는 '등용문(登龍門)', '사이비(似而非)', '도외시(度外視)'와 같은 말 역시 유래가 분명하므로 고사 성어에 해당한다. 그리고 '제왕 절개(帝王切開)',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강을 건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와 같이 중국의 고사가 아닌 서양의 고사에서 연유한 말도 있다.
    이들 관용적인 성어(成語) 가운데는 중국의 문헌에서 유래한 고사 성어와는 달리 우리의 문헌에서만 발견되는 말이거나 우리 속담을 한역(漢譯)한 것들이 있다. '홍익인간(弘益人間)', '함흥차사(咸興差使)'는 우리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사자 성어(四字成語)이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와 같은 뜻의 '오비이락(烏飛梨落)'이나 "제 논에 물 대기"와 같은 뜻의 '아전인수(我田引水)'는 우리 속담을 한문으로 번역한 한역 속담(漢譯俗談)들이다.
    이들 한역 속담들은 조선 인조 때 학자인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나,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실린 '열상방언(洌上方言)', 정약용(鄭若鏞)의 "이담속찬(耳談續纂)", 편저자 미상의 '동언해(東言解)'와 같은 문헌들에 실려 있다.
    이들 속담들은 넉 자로 된 성어 혹은 문장형으로 한역(漢譯)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비교적 친근하게 사용하고 있는 사자 성어를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등잔 밑이 어둡다 : 등하불명(燈下不明)
쇠귀에 경 읽기 : 우이독경(牛耳讀經)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 오비이락(烏飛梨落)
달리는 말에 채찍질 : 주마가편(走馬加鞭)
내 코가 석 자다 : 오비삼척(吾鼻三尺)
제 논에 물 대기 : 아전인수(我田引水)
잠자는 범에게 코침 주기 : 숙호충비(宿虎衝鼻)

우리 속담을 다음과 같이 문장 형태로 번역한 것들도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 : 一魚混全川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 一日之狗 不知畏虎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 千里之行 始于足下
백 리 길은 구십이 반이라 : 行百里者 半於九十
말 가는 곳에 소도 간다 : 馬行處 牛亦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