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의 이해

달의 죽음과 재생(再生) - 지상에서 영원으로-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은 눈섭을
즈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천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아가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冬天')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에는 눈썹을 소재 로 한 시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동천(冬天)'을 으뜸으로 친다. 이 시에 나타난 비유적 문장의 뜻은 대략 다음과 같다.
    "내가 마음속에서 내 님의 눈썹을 천 밤 동안 꿈속에서 맑게 씻어다가 하늘에다 옮겨 심어 놓았다. 옮겨 놓은 시기는 동지섣달이다. 매서운 겨울새가 그걸 알고 비껴 날아간다." 결국 매서운 겨울새의 출현은 나의 노력으로 임의 눈썹이 하늘에 심어진 것을 인정하는 증인이 된다. 이 문장들에 나타나는 비유적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다.

f1   f2   f3
하늘을 -----↖↗------ 내 마음속 임의 얼굴에 --↖↗------- 하늘에
나는 ---------------------- 돋은 -----------------------
매서운 새 --↙↘------- (매서운) 눈썹 ----------↙↘-- 매서운 달(그믐달?)

새(f1)와 눈썹(f2)과 달(f3)의 유추적 비유 관계를 다시 생각하면 '눈썹(f2)과 달(f3)의 관계'에서 '하늘의 매서운 눈썹'은 '달'이고 '님의 얼굴에 돋은 매서운 달'은 '눈썹'이다. 마찬가지로 새와 임의 관계에서 '내 임 얼굴에 돋은 매서운 새'는 '눈썹'이고 '하늘을 날아가는 매서운 눈썹'은 '매서운 새'이다. 이런 유추 관계에 덧붙여 매 서운 새, 매서운 눈썹, 매서운 달 사이에 비유적 공통점을 찾으면 비수 같은 매서움의 형태적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눈썹과 달의 공통점은 '심는다'는 식물 이미지로 비유된다는 것이다. 즉 '자란다'는 식물 이미지가 양쪽에 다 나타난다. 사람의 몸에서 자라고 변화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 눈썹과 머리털이다. 눈썹이 자라듯이 달도 또한 자란다. 달은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고 그믐달이 되며 사라졌다가 다시 초승달로 되는 순환 과정을 보여 준다. 달의 주기에 따라 바닷물도 밀물과 썰물이 되고 달의 주기에 맞추어 곡식의 씨앗도 심고 거두므로 달의 순환은 농업과 어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눈썹과 달의 차이점을 들면 일상적으로 눈썹은 검은데 달은 하얗다는 사실이다. 이 비유의 단계에서는 달의 재생력에 초점이 모아진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의 씨를 안고 있다. 즉 자기 속에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안고 태어난다. 여기서 고대인들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재생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달이 사라졌다가 다시 하얗게 나타나는 순환 과정을 보고 고대인들은 죽음을 넘어선 신화적 세계를 생각하였다.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자라는 식물처럼, 달은 하늘에서 자라 사라졌다가 재생하고, 사람의 눈썹도 생명의 한계를 넘어 하늘에 심어지는 재생력을 보여 준다. 이런 달과 눈썹의 공통점을 찾으면 다음과 같다.

Ce 달 --------------- x 자란다 ------------------------ 눈썹 Ct
그믐/초생달 -------- x 검었다가 하얘진다(재생력) -------- 검은 눈썹/흰 눈썹

임의 눈썹이 하늘에 옮겨지기까지는 시적 화자의 가슴속에서 천 밤의 꿈으로 씻는 노력이 있었다. 임의 눈썹이 달처럼 천상에 오르는 것은 지상적 존재가 꿈의 도움을 통해 영원의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늙음이 아닌 천 밤의 꿈으로 맑게 닦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신라 때의 노래인 향가 "원왕생가(願往生歌)"의 바탕이 이 시에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달아 이제/ 서방(西方)까지 가시려는가/ 무량수불(無量壽佛) 앞에/ 일러 사뢰옵소서/ 맹세가 깊으신 아미타불을 우러러/ 두 손을 모두어/ 왕생(往生)을 원하면서/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옵소서/ 아! 이 몸을 남겨 두고/ 四十八 大願을 이루실까" 이 시의 배경 설화에는 광덕과 엄장이란 두 친구의 두터운 우정이 깔려 있다. 그들은 먼저 극락정토로 가게 될 때 서로 알리자고 했다. 어느 날 엄장의 집 창밖에서 "나(광덕)는 이미 서방 정토에 가니 속히 나를 따라오라."는 말이 들렸다. 다음날 엄장이 광덕의 집에 가니 과연 죽었다. 그의 아내 말을 들으니 광덕은 저녁마다 정좌하고 한 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염불하고 혹은 16관(觀)(중생이 죽어서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 닦는 법)을 지어 미혹함을 깨치고 진리를 달관함이 이미 이루어져 달빛을 타고 가부좌한 채로 공중에 떠올랐다고 한다.
    "원왕생가"의 노랫말도 "달아, 극락정토(極樂淨土)가 있는 서방(西方)에 갈 때, 혼자 가지말고 왕생(往生)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아뢰어 주게. 아! 이 몸을 남겨 두고 너 혼자 서방에 가서 48대원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대승 불교적인 염원을 담아 노래하고 있다. "원왕생가"의 '광덕'을 따라 도를 닦던 엄장처럼 서정주의 시 '동천'의 화자도 임에 대한 사랑을 매개로 먼저 가신 임의 검은 눈썹을 천 밤 동안 꿈으로 닦아 하얗고 매서운 달의 형상으로 만들어 하늘에 심어 놓는 동일한 고행과 기도의 발상법을 보여 준다.
    달이 서방까지 가려면 숱한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임의 눈썹에 나의 염원을 담아 서방 정토에 가려는 노력도 천 밤의 꿈의 기도가 필요하고,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는 새의 여행도 고통스러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들 셋은 서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매서운 새도 알아보고 시늉하며 비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임의 눈썹도 자라고 닦여서 달빛에 올라 달의 죽음과 재생의 여행길에 동참함으로써 나도 임과 함께 그 불심(佛心)에 한데 어울려 서방 정토를 향해 떠나고, 매서운 새도 긴 겨울 여행길에 달빛에 동승하여 하늘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