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특집

말은 지도(地圖)다

김희진(金希珍) / 국립국어연구원

§. 말은 지도처럼
    언어는 지도(地圖)와 같다. 지도의 생명은 정확성에 달려 있다. 정확한 지도가 있으면 미지의 땅도 밟아 볼 수 있고, 직접 찾아가 보지 않더라도 현지(現地)를 머릿속에 옮겨 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지를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은 지도는 쓸모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여행자에게 혼란을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어 세계와 사실 세계 간에는 어긋남이 없이 항상 대응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 '어긋남'을 낳게 하는가. 사실 세계를 부풀리고 선정적(煽情的)으로 왜곡하여 말할 때, 한때의 일부분만 보고 늘 그렇다는 식의 총칭적인 표현을 할 때, 부정확하게 되는대로 말해 버릴 때 언어 세계와 사실 세계 간에 간극이 생긴다.
    실제보다 과장하거나, 지나친 강성(强性)으로 위압감을 주는 말, 일치적(一値的), 총칭적(總稱的) 사고에서 나온 말, 말뜻이나 어법을 찬찬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부정확하게 쓰이는 말이 넘쳐 나고 있다. 과장되고 극단적이며 선정적으로 사실을 부각하려 하거나 말뜻이나 어법을 확인하지도 않고 급히 서둘러 말해 버리는 데서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

§. 부풀리고 뒤집히고 뒤틀린 말들
    '수위(首位)'·'1위' 앞에 으레 '단연(斷然)'을 놓는 일이 공식처럼 되었고, 정례적으로 시행한 인사(人事)인데도 '단행(斷行)했다'고 하여 그곳에 비상사태(非常事態)라도 선포된 것처럼 강성(强性)을 띠게 한다. 하나의 팀을 '군단(軍團)'·'사단(師團)', 수장(首長)을 '사령탑', 거점을 '교두보(橋頭堡)', 근거지를 '아성(牙城)'이라 부르고, 경쟁자가 맞붙으면 '격돌(激突)'하여 '사생결단(死生決斷)'으로 '공방(攻防)'을 계속하다가 설욕하면 '고지 탈환(高地奪還)'이요, 주저앉으면 '난공불락(難攻不落)'이니, 자금(資金)인 '총알'을 '장전(裝塡)'하고 '전열(戰列)'을 재정비하여 '총력전(總力戰)'을 펴 상대를 '초토화(焦土化)'한다는 식의 살벌한 군사 관련 용어를 일상에서 즐겨 쓴다.
    동일한 현상에 대해서도 '대거(大擧)'·'무려(無慮)', '고작'·'겨우'를 편리한 대로 골라 써서 객관성 유지에 손상을 주고 관련 기관이나 관계자에게 유·불리(有不利)를 가져다준다. 또 전체 논의 대상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막연히 '상당수(相當數)'로 얼버무린다. 일부에 지나지 않는 몇몇 예를 두고 '봇물', '사태(沙汰)' 또는 '총동원', '총집합'으로 부풀린다. 또 걸핏하면 '초(超)'를 붙인다. '초긴장', '초강경', '초호화', '초일류' 등.
    말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쓰는 말이 하나 둘인가. 우연히 만나든 예정대로 만나든 만나기만 하면 '해후(邂逅)'요, 문제지에서 답지(答肢)가 보이면 '객관식', 답지가 보이지 않으면 '주관식'이라고 몰고 간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 수틀리면 '혈세(血稅)'가 줄줄 샌다면서 정도세정(正道稅政)하려 애쓰는 국세청을 난처하게 만들며, 단 하나의 직책명을 내놓고도 '역임했다'고 으스댄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상황에서는 '운명을 달리했다'고 비통해하며, 통계 수치만 높으면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월등히' 높다고 한다. '특기(特記)'해야 할 난(欄)에 '특이(特異)' 사항을 써 놓고, '빈도(頻度)가 드물거나 흔하다'고 하며, '말씀이 계시겠다'고도 말한다. '요금(料金)'과 '가격(價格)'을 구분 없이 쓰고 '작다'와 '적다'를 넘나들며, '유무(有無)'와 '여부(與否)'를 구별하지 않는다. '임부(姙婦)'더러 '산모(産母)'라 부르고 남의 '의견'을 물으면서 '자문을 구한다'고 하며, 차이가 나도 '틀리다'요, 맞지 않아도 '틀리다'다. 자신이 직접 소개하면서도 '소개시켜 준다'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주객이 바뀐 말들도 있다. 신청 서류를 내야 할 사람이 '접수(接受)한다'고 하고, 남의 작품을 모아 상을 주어야 할 사람이 '응모(應募)한다'고 한다. '교육'과 '수강'이 구분 없이 쓰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말을 뒤집어 하기도 한다. '입증(立證)'이나 '증명'이라 해야 할 자리에 '반증(反證)'이라고 버젓이 말하고, 남의 성공 사례에서 얻은 본보기를 두고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문자를 쓰며 흐뭇해한다. 공석(公席)에서 '불편부당(不偏不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직자의 다짐은 국민을 절망케 한다.
    말뜻 중 입맛에 맞춰 반 도막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예도 있다. '애환(哀歡)'을 '슬픔'만으로 고집하여 남의 '애환을 위로하려' 들고, '난이도(難易度)'를 '어려운 정도'로만 보고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어려워진다'는 논리를 편다. '인상착의(人相着衣)'를 말한다고 해 놓고 '얼굴 생김새'만 말하고 '착의'에 대해서는 시치밀 떼며, '기존(旣存)에'를 '이미'와 동일시하여 '기존에 발표된 학설과는 다른'이라 말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갓 쓴 데다가 중절모를 덮어 쓴 듯한 동어 반복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서도 달력에 나타나는 '탄신일(誕辰日)'은 '탄신'을 '탄생'과 같은 말로 잘못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예로는 '판이(判異)하게 다르다', '널리 보급(普及)하다', '가장 최근(最近)', '모음집(--集)', '순찰(巡察) 돌다', '병원(病院)에 입원(入院)하다', '준비(準備)를 갖추다' 등을 더 들 수 있다.

§. 사실 세계와 언어 세계가 일치해야
    '지도'에서, '공장'을 '학교'라 하고 '골목길'을 '사통팔달 큰 길'이라 하며 '주민 5만 명'을 '쌀 5만 톤'이라 한다면 그 지도는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말을 상황에 알맞게 하는 일은 여행할 때 정확한 지도를 사용하는 것처럼 매우 긴요한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예가 적잖다. 기초가 없이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객관성도 정확성도 타당성도 결여되어 있으니 신뢰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착오가 혼동을 빚고 혼동이 혼란을 낳으며 혼란이 혼돈(混沌)의 세계로 우리를 휘몰고 간다. 여기에서 '말의 매력'이니 '사색'이니 '인생의 향기'니 '철학'이니 '우주관'이니 하는 것을 운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람은 가도 그가 한 말은 길이 남는 법이다. 무엇이 그리 바빠 말뜻이나 어법을 파악하지 않은 채, 사전 한번 찾아보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쉽게 말해 버리는지 알 수 없다. 쓸 말은 적은데, 허황되고 뒤틀리고 설익은 말이 어지럽게 흩날리니 어느 세월에 '바르고 품위 있는' 언어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