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이해

조지훈(趙芝薰)의 시 ‘산방’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닫힌 사립에
꽃잎이 떨리노니

구름에 싸인 집이
물소리도 스미노라.

단비 맞고 난초 잎은
새삼 치운데

볕 바른 미닫이를
꿀벌이 스쳐간다.
바위는 제 자리에
옴찍 않노니

푸른 이끼 입음이
자랑스러라.

아스람 흔들리는
소소리 바람

고사리 새순이
도르르 말린다.

(山房)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시 ‘산방(山房)’ 첫 연을 읽으면 여러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사립문은 왜 닫혀 있나? 사립문 안에서 꽃잎은 왜 떨리는가? 그 궁금증은 제3연까지 읽으면 어느 정도 풀린다. 즉 제1∼3연까지는 비 올 때의 풍경으로, 비 맞아 사립 안 꽃잎이 떨렸던 것이다. 비 올 때 산속 집은 구름에 싸일 뿐 흔들리지 않고 물소리만 화자의 귓가에 스민다. 방 밖의 비 맞은 난초는 산기운이 서늘하여 치워(‘칩다’는 ‘춥다’의 강원, 경상, 함경 방언임.)한다. 제4연은 햇빛이 난 풍경이다. 제5연에 오면 바위가, 제6연에 오면 이끼가, 제7연에 오면 바람이, 그리고 제8연에 오면 고사리가 등장하여 산속의 한 풍경화를 보여 준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 보면 공간적으로 사립문 안에는 꽃이 피어 있고, 구름 속에는 집(산방)이 있고, 집 안 난초가 자라는 안쪽 방 안에는 이 시의 모든 대상들을 바라보는 화자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적 화자는 방 안에서 비 오고 해가 나 꿀벌이 스쳐 가는 광경을 미닫이를 열고 방 안에서 내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5연에 등장하는 바위는 제자리에 ‘옴찍’ 않고 있다가 오랜 시간이 흘러 푸른 이끼가 낀 것이 자랑스럽다고 외친다. 이 무슨 낯선 바위의 목소리인가? 그것은 시적 화자의 또 다른 목소리일 수 있다. 산속의 바위는 당연한 존재. 방 안의 나도 바위처럼 ‘옴찍’ 않고 있으면서 비 오고 햇볕 나는 풍경을 긴 시간 바라보지 않았는가? 바위는 비 오건 바람 불건 ‘옴찍’ 않아 이끼마저 낀다.
    제8연 ‘고사리 새순이 도르르 말린다’의 구절은 궁금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고사리 새순이 도르르 말리는 것을 화자가 어떻게 보았을까? 그리고 고사리 새순은 왜 도르르 말리는가? 바람이 불어서 도르르 말리나? 아니면 비 오고 햇볕 나고 바람 불어서 고사리 새순이 그 사이에 ‘자랐다’는 또 다른 표현일까. 고사리의 생리가 도르르 말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풍경을 담은 시 ‘산방’은 시인 조지훈이 오대산 월정사의 깊은 산속에 칩거했을 때 쓴 시로 알려졌다.
    이 시에는 흔들리는 것과 흔들리지 않는 것들의 긴장감이 팽팽히 느껴진다. 비 오고 햇볕이 나는 데 따라 꽃잎은 떨리고 난초 잎도 새삼 추워하고 꿀벌도 스쳐 가는데 방 안에 앉은 나만 ‘옴찍’ 않고 앉아 비가 오는지 햇볕이 나는지 상관없다. 마찬가지로 바위도 제자리에서 ‘옴찍’ 않고 앉아 비가 오나 햇볕이 나나 그대로 있다 보니 이끼가 끼었다. 흔들리지 않는 것들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적 관계가 나타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바위에 이끼가 낀 것처럼 나에게는 아마 수염이 났을 것이고 집에는 구름이 둘러싸여 가질 않는다. 이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다. 집과 바위는 당연하다 해도 사람인 화자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 그래서 제1연의 첫 구절 ‘닫힌 사립에/ 꽃잎이 떨리노니’의 궁금증이 풀어진다. 사립문이 왜 닫혔나? 주인이 출입을 안 하기 때문이다. 비 오고 해 나는 동안 나에게는 수염이 자라고 집은 구름에 싸이고 바위는 이끼에 덮여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화자는 바위처럼 ‘옴찍’도 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가고 바위는 화자처럼 이끼에 싸여 생물화하려는 듯하다.

남성인 나 바위
(수염) 구름 이끼

이들을 둘러싼 움직이는 것들은 작고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다. 시적 화자는 어떻게 비 맞아 떨리는 꽃잎을 보았으며, 언제 추워하는 난초 잎을 보았고 스쳐 가는 꿀벌들과 고사리를 곁눈질했을까 새삼 경이롭다. 서로 대비되는 것은 화자를 둘러싼 난초와 꽃이 떨리고 추워하는 데 비해 바위의 가장자리에 핀 고사리는 도르르 말릴 뿐이다. 꽃과 난초가 사람에 가까운 존재라면 고사리는 자연물인 바위에 가까운 존재로 보인다. 꽃과 난초는 연약하여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데, 고사리는 오히려 씩씩하게 도르르 말리면서 바람의 힘에 장난스럽게 대응하고 있는 듯하다. 산속의 시적 화자는 바위 곁에서 바위와 함께 ‘변하지 않는’ 이 우주의 중심이 되려는 지향성을 보여 주지만 이들을 둘러싼 꽃과 풀들도 그 나름대로 기후의 변화에 흔들리면서 적응하고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