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순화

법령문의 순화(2)

김문오(金文五) / 국립국어연구원

법령문은 일반 국민들이 읽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국민이 법령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거나 오해하기 쉽도록 법령문이 작성되어 있다면, 그 법령문은 일반 국민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가 어렵다. 여기서는 지난 호에 이어서 민법을 대상으로 법령문의 어휘 중에서 순화가 필요한 것들을 살피고자 한다.

(1)

相對方과 通情 虛僞의 意思表示는 無效로 한다.
<민법 제108조 제1항>

(수정문)

상대방과 서로 짜고(또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은 뒤') 허위로 한 의사 표시는 무효이다.

'通情'이란 단어는 “①=통심정[(通心情):서로 마음을 주고받음]. ②=통사정[(通事情):남에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함]. ③남녀가 정을 통함. ④세상 일반의 사정이나 인정.”<“표준국어대사전” 참조>과 같이 다의어이다. 그런데 위 법령문에서는 '통정'에 대한 사전의 뜻풀이 중 ①에 해당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현대 국어에서는 '통정'의 뜻 중에서 ③의 사용 빈도가 가장 높고 ①의 사용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므로 위와 같이 고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허위의 의사표시'라는 완전한 구(句) 형식보다는 '허위로 한 의사 표시' 또는 '허위로 의사 표시를 한 것'과 같이 서술어를 보충한 형식이 더욱 자연스럽다.
    덧붙여 '무효로 한다'라는 서술어는 행동주를 필요로 하는데, 행동주를 밝히기 곤란한 문맥이므로 서술어를 '무효이다'로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2)

① 債權은 10年間 行使하지 아니하면 消滅時效가 完成한다.
② 債權 및 所有權以外의 財産權은 20年間 行使하지 아니하면 消滅時效가 完成한다.
<민법 제162조 제1항, 제2항>

(수정문)

①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료된다.
② 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은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료된다.

'소멸 시효(消滅時效)'란 권리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경우에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를 가리키는 법률 용어이다. '소멸 시효'와 함께 '소멸 시효의 시작·진행·중단·정지' 등의 법률 용어도 있는데, 이들과 함께 쓰이기 위해서는 '소멸 시효의 완성'보다 '소멸 시효의 완료'가 더 적절할 듯하다. 위 문맥에서 '완성한다'는 능동형, 타동사이어서 맞지 않으므로 일단 피동형, 자동사로 바꾸어야 하고 거기다가 의미의 적절성도 고려하여 '완료된다'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3)

消滅時效가 完成된 債權이 그 完成前에 相計할 수 있었던 것이면 그 債權者는 相計할 수 있다.
<민법 제495조>

(수정문)

소멸시효가 완료된 채권이 소멸 시효 완료 시점 이전에 맞계산(또는 엇셈)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비록 소멸 시효가 완료되었을지라도 그 채권자는 맞계산(또는 엇셈)할 수 있다.

'상계'라는 용어는 일반 국민에게 낯선 용어이므로, '맞계산'<“법령용어순화편람”(1994, 법제처)>, '엇셈'<“행정용어순화편람”(1992, 총무처)>이라고 순화할 수 있다. “서로 주고받을 것을 비겨 없애는 셈”이라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쓰던 말은 '엇셈'이었다. 그런데 '엇셈'의 '엇-'(엇각, 엇길, 엇나가다, 엇베다…)에서는 '어긋나게 하는'이란 의미가 먼저 떠오르고 '교차되게 하는, 마주 하는'이란 의미는 잘 연상되지 않으므로 그 대안으로 '맞계산'이란 용어가 나온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런 연유로 수정문에서도 '맞계산'을 '엇셈'보다 먼저 제시하였다. 한편 '…할 수 있었던 것이면'의 뒤에 '비록 소멸 시효가 완료되었을지라도'라는 말을 넣어 주는 것이 문장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4)

惡意의 占有者는 收取한 果實을 返還하여야 하며 消費하였거나 過失로 因하여 毁損 또는 收取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果實의 代價를 補償하여야 한다.
<민법 제201조 제2항>

(수정문)

악의의 점유자는 수취(收取)한 이득을 반환하여야 하며, 이득 소비하였거나, 과실(過失)로 훼손하였거나 수취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대가(代價)를 보상하여야 한다.

법률 용어로 '과실(果實)'은 '원물(元物)로부터 생기는 경제적 수익'을 가리키는데, 천연 과실(예:과수의 열매, 가축의 새끼, 달걀, 우유, 양모, 토사, 석재 등)과 법정 과실(예:집세, 지료(地料), 이자 등)로 나누기도 한다.<“新法律學大辭典”, 배재식 외 2인 감수, 법률신문사 간행(1992:212∼213) 참조> 그런데 법률 용어 '과실'을 전문 용어로 인정하여 그냥 쓰는 것보다 '이득(利得)'이라고 고쳐 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왜냐하면 법률 용어 '과실'의 의미가 일반 용어 '과실'의 의미에 비해 너무 확장되어서 법률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들은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消費하였거나 過失로 因하여 毁損 또는 收取하지 못한'의 앞에는 '이득을'이란 목적어가 있는 것이 적절하며, '그 果實의 代價'는 그냥 '그 대가'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현행 법령문에는 일반 국민들이 잘 쓰지 않는 말, 통상적인 의미와 다르게 쓰는 말이 상당히 많이 있다. 법령문이 국민에게 더욱 친근해지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 용어나 어구, 통상적인 의미와 전혀 다르게 사용하는 용어 등을 이해하기 쉽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