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용어화 논쟁 특집

사회 언어학적으로 영어 공용어화는 가능한가?

박용찬(朴龍燦)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사

지난 5월 14일 정부와 민주당이 제주도 내에서 영어를 제2 공용어로 공식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힌 후 영어 공용어에 대한 논쟁으로 전국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러한 영어 공용어론의 주된 요지는 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어를 아예 공용어화하여 전 국민이 모국어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이질적인 두 언어인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는 다언어 사회(多言語社會)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다언어 사회에서는 단일 언어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사회 언어학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의 영어 공용어화론에는 그러한 사회 언어학적 문제에 대해 고려한 바 없었다. 여기에서는 사회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영어 공용어화론자의 주장이 어떤 허점을 안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가 영어를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이 영어를 영미인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다언어 국가(독일어, 프랑스 어, 이탈리아 어, 레토로망스 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음)인 스위스에서 독일어권에서 태어난 사람은 일생 동안 독일어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즉, 독일어를 제외한 다른 공용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캐나다 퀘벡 주에서도 프랑스 어와 더불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팝 가수인 셀린 디온은 미국에서 가수로 활동하기 위해 오랜 동안 영어 학습을 했다고 한다).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는 인도의 경우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3%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나라가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특히, 중장년층의 경우)은 한국어 하나만으로 언어생활을 하리라는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다언어 사회에 산다고 해서 전 국민이 다언어 사용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영어 사용 능력에 따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소수의 일등 국민과 그러하지 못한 다수의 이등 국민으로 나누는 꼴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어 국론 분열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둘째, 둘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는 다언어 사회에서는 언어 접촉에 의한 언어 충돌이 있다는 점이다. 언어의 세계도 정치의 세계 못지않은 권력 투쟁의 장이다. 사실상 두 언어를 조화롭게 함께 쓴다는 것은 환상이다. 언어 간에는 필연적으로 서열이 매겨져 영향력이 있는 언어와 그렇지 않은 언어가 생긴다는 점이다. 여기서 영향력이 있는 언어란 그 사회에서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더 유용한 언어를 가리킨다. 그것은 인도에서의 영어와 힌디 어,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서의 프랑스 어와 스와힐리 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둘 이상의 언어 가운데 힘이 없는 언어는 사멸되어 갈 수밖에 없다. 최근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거치면서 지구 상에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언어는 10여 종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였고 유네스코는 향후 100년 뒤에는 세계 언어의 90%가 사라지고 영어를 비롯한 몇몇 언어만이 살아 남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참고할 때 우리나라에서 영어 공용어화를 시행하는 것은 국어의 사멸을 재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다언어 사회에서는 언어 접촉에 의한 변종 언어의 창조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종 언어는 국가의 위신을 실추할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여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변종 언어의 대표적인 사례로 피진과 크리올을 들 수 있다. 피진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과 상거래를 하기 위해 새로이 만들어진 말로, 어휘는 영향력이 있는 지배 집단의 언어를 바탕으로 하지만 문법은 피지배 집단의 언어와 유사하다. 두 언어를 절충하여 어휘도 적고 문법 규칙도 간단하게 만든 초보적인 언어이므로 배우기가 매우 쉽다. 반면 크리올은 피진이 토착화해서 어떤 사회에서 모어가 된 것을 가리킨다. 피진에 비해 문법 구조가 복잡하고 어휘가 풍부하다.
    최근 4개 공용어(영어, 중국어, 말레이 어, 타밀 어)의 하나로 영어를 채택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중국어를 바탕으로 한 변형 영어인 ‘싱글리시’가 문제가 되고 있으며 역시 원주민 언어인 타갈로그 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는 필리핀에서는 이들의 혼성 영어인 ‘태글리시’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피진이나 크리올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얼마 전 고척동(吳作棟) 총리가 “틀린 영어를 쓰면 지적이지 못하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게 돼 국가 이미지를 실추하게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되겠다는 싱가포르의 목표 달성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싱글리시’가 싱가포르에서 커다란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할 경우, 변종 영어로 인하여 오히려 국가 위신과 국가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영어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까닭에 ‘콩글리시(Konglish: 이 또한 콩글리시임)’ 즉, 한국식 영어(Korean English)라는 변종 영어가 널리 쓰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식 영어는 ‘올백(all back), 골인(goal in), 핸드폰(handphone), 더치페이(Dutch pay), 러브호텔(love hotel), 모닝커피(morning coffee), 백넘버(back number), 베드타운(bed town), 스킨십(skinship), 아이쇼핑(eye shopping), 엠티(M.T.←Membership Training), 올드미스(old miss), 카센터(car center), 하이틴(high teen)’ 등 영어와 다른 의미로 쓰거나 영어를 한국어식으로 조합해서 쓴 단어가 대부분이다. 또한 영어의 부정 의문에 대한 대답에서 한국식으로 ‘yes’와 ‘no’을 선택하기도 하는 등 한국식 영어 문장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한국식 영어는 영미인과의 의사소통에서 많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를 제2 공용어로 선택하게 되면 싱가포르나 필리핀의 경우보다 변종 영어의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표준 영어가 아닌 변종 영어의 득세로 영미인과의 의사소통은 더 어려워지고 올바른 영어를 습득하기 위한 재교육에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변종 영어로 인해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이 손상되고 비즈니스를 망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여 전 국민이 영어를 모어처럼 자유롭게 구사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공용론자의 본래 목표와는 어긋나는 것이 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주장은 사회 언어학적으로 많은 허점을 안고 있다.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서 우리나라의 전 국민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도록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민 간에 위화감이 조성되어 국론 분열로 이어질 소지가 크며 국어와 영어 간에 서열화가 매겨져 국어의 사멸을 재촉할 수도 있다. 또한 변종 영어의 창궐(猖獗)로 국가 위신 및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