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용어화 논쟁 특집

공용어란 무엇인가?-공용어는 하나로 충분하다-

김세중(金世中) / 국립국어연구원

최근 들어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 등이 제주도에서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하자는 계획을 마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관련 인사들은 찬성과 반대 의견을 다투어 내놓음으로써 국민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공용어의 개념을 살펴보자. 공용어란 한 나라 안에서 공식적으로 쓰는 언어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행정, 입법, 사법의 절차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뜻한다. 한국에서 공용어란 두말할 것 없이 한국어이다. 한국어가 공문서나 법률, 판결문 등에서 쓰이기 때문이다.
    사실 공용어라는 개념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공용어란 보통 언어가 여럿 쓰이는 나라에서 필요한 개념이요, 한국처럼 단일 언어 국가에서는 아예 공용어라는 말이 거론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외에 지구 상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 외에 여러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여러 민족이 산다는 것은 여러 언어가 쓰인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한데 보통 다수 민족의 언어가 공용어가 된다.
    또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여러 부족이 모여 한 국가를 이루고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어느 특정 부족의 언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이 여타 부족들의 반발 때문에 애초에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들 나라들은 과거에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지배 국가의 언어였던 영어나 프랑스 어 등을 공용어로 쓰고 있다.
    단일 언어 국가인 한국에서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어가 제2의 공용어라면 공공 기관에서 모든 공문서는 영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모든 법령은 영어로 씌어야 하며 재판 절차에 쓰이는 모든 문서 또한 영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즉 그동안 한국어로만 작성하면 그만이었던 각종 문서를 영어로도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관공서의 모든 문서를 한국어와 영어로 이중으로 작성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까. 관광서의 모든 공문을 영어로 작성해야 한다면 공무원들이 치러야 할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자동 번역 기계가 나오면 영작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또 그 전에라도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배치되어 각 부서에서 생산되는 문서를 영어로 번역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일이요 낭비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금세 알 것이다.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외국인들에게 외국어로 응대하고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발급해 주는 것으로 족하다. 외국인들이 보지도 않고 그들과 관계되지도 않는 문서까지 죄다 영어로 작성해서 어디에 쓸 것인가.
    일각에서는 영어를 제2의 공용어로 할 것을 주장하면서 외국 투자 상담 기관의 조언을 거론하기도 한다. 한국에 투자를 하려고 해도 영어가 안 통해서 불편하니 한국에서 영어를 제2 공용어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외국 기관의 권고는 강대국의 안이하고 오만한 자세를 드러낸 것뿐이니 귀 담아 들일 일이 아니다. 너희 나라에 가서 투자할 테니 영어를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쓰고 있으라는 턱없는 요구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여 정책으로 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국은 언어 문제로 고통을 받지 않는 몇 안 되는 매우 드문 나라이다. 어딜 가나 한국인이고 한국말이 통한다. 그런 한국에서 공용어는 한국어 하나로 족하다. 영어는 외국어로서의 언어 교육을 내실있게 하여 관련 종사자들의 영어 구사 능력을 향상시킬 일이지 공용어의 지위에 올릴 것이 아니다. 한국의 관공서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인들과 영어로 의사소통하고 영어 문서를 제공받는 정도를 가지고 영어를 제2의 공용어라고 말했다면 공용어의 개념을 몰라서 한 말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