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용어화 논쟁 특집

영어의 공용어화론의 허점

남기심(南基心) / 국립국어연구원

정국은 항상 불안하고 하도 가난해서 제대로 먹기가 힘들던, 지난 1950년대에 우리나라가 차라리 하와이처럼 미국의 오십 몇 번째 주로 편입하면 가난 걱정, 안보 걱정이 없어서 좋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말을 귀담아듣고 속에 두는 사람도 없었고 말하는 사람도 진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영어의 공용어화 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을 귀담아듣는 사람도 많고 아주 마음먹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당혹스럽다. 둘 다 생존 논리에 입각한 주장이라는 점에서 같은데도 말이다.
    제주도에서만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하자는 것이지만 한번 그렇게 시작이 되면 그것이 결국 전국적으로 번질 것도 뻔하고, 영어를 잘해서 대접받는 상류층과 영어를 못해서 천대받는 하류층이 형성될 것도 뻔하고, 그러다 보면 우리말로 해야 하는 우리의 문학도, 역사도 차츰 튀기가 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잃게 되고,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결국 이 나라가 뿌리도 역사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행정적으로만 존재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 것도 뻔한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단번에 나라를 없애자는 1950년대 이야기나 천천히 없어지게 만들자는 영어 공용어화 주장이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데 왜 그때는 그것을 모두 허튼소리로 들었고, 지금은 그것을 심각하게 듣는 사람이 생겼을까? 그때는 아무리 앞뒤를 둘러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던 암담한 때라 그렇게 해서라도 우선 살고 보자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소리였고 지금은 조금 더 잘 살자는, 그래도 좀 여유 있는 얘기인데도 말이다.
    영어가 또 하나의 공용어가 되면 영어로 교육받기를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영어로 교육을 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공 계통 교육은 혹시 영어로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문학이나 역사까지 영어로 교육을 할 수는 없다. 문학 창작은 어떤가? 이것은 절대로 영어로 할 수가 없다. 우리말에는 수천 년 동안 우리가 겪어 온 우리의 역사적 경험, 생활 정서가 서려 있고 영어에는 영어를 써 온 그 나라의 역사적 경험,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이 담겨 있다. 영어로 창작되는 문학이 우리의 문학이 될 수 없고 영어로 하는 우리 역사가 사실의 나열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적 정신을 담지는 못한다. 문학도 역사도 없다면 그것은 정신적으로 박제가 되는 것이다. 영어가 공용어가 되면 우리나라에는 국어가 둘이 되는 셈인데 하나의 문화, 동일한 역사를 두 개의 이질적인 언어가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 아닌가? 세상에 어디 그러한 예가 있는가? 아무리 제주도에 한한 것이라 하지만 어떻게 영어를 국어와 동등하게 대우하자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제주도는 버린 땅인가? 제주도에는 국적 없는 풍속이 새로 생기고, 야릇한 튀기 문화가 생겨나도 좋고, 제주도 사람들은 심각한 정체서의 혼란을 겪어도 좋다는 말인가? 그래도 경제적으로 잘 살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이미 여러 사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영어 교육 더 나아가서 외국어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외교나 통상이 잘 되도록 하자는 것과 아예 영어를 또 하나의 국어로 만들자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제주도를 국제 자유 도시로 하였을 경우에 외국인의 불편이 예상된다면 관계 행정 부서에 외국어에 능통한 관리를 배치하거나 통역을 둘 수도 있고 외국인 상대의 공문을 영어로 작성해 줄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는가? 영어가 국어와 똑같은 법적 지위를 가진 공용어라야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외국어로 된 문서라 할 수 있는 외국 여권을 가진 외국인의 입국을 허용하는 것이 영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공용어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리고 언어와 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