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 표기법의 이해

‘쥬스’는 잘못된 표기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 주변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외래어 오표기는 ‘쥬스’인 것 같다. 그런데 ‘쥬스’가 잘못된 표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한다. ‘쥬스’라는 표기에 하도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이 틀린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시중에서 판매하는 과일 음료 대부분이 ‘ ○○쥬스’라는 상표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쥬스’에 대한 올바른 표기는 ‘주스’이다. 외래어를 적을 때에는 ‘쥬’나 ‘츄’ 같은 글자를 쓰지 말도록 정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쥬스’뿐만 아니라 ‘피카츄’나 ‘쥬피터’ 같은 표기는 모두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난다. ‘피카추’, ‘주피터’로 적어야 한다.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ㅈ’이나 ‘ㅊ’에 이중 모음이 결합한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를 쓰지 않도록 하고 있다. 즉 마찰음 [Ʒ]와 파찰음 [dʒ, ts, dz, t]가 모음 앞에 올 때에는 ‘지, 치’가 아니라 ‘ㅈ, ㅊ’으로 적으므로 항상 ‘자, 저, 조, 주’, ‘차, 처, 초, 추’로 표기한다. 이렇게 규정한 이유는 우리말에서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가 발음상 ‘자, 저, 조, 주’, ‘차, 처, 초, 추’와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어에서 ‘ㅈ, ㅊ’은 이미 구개음이므로 ‘자, 조, 조, 주’ 등은 구개모음 ‘ㅣ’가 뒤에 있는 ‘쟈, 져, 죠, 쥬’와 발음이 같다. 따라서 ‘자, 저’와 ‘쟈, 져’ 등을 구분해서 표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와 ‘쟈’, ‘차’와 ‘챠’의 발음이 같다고 하는 것은 국어에서 이들이 뜻을 구분하는 데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국어에서 단모음 ‘ㅏ, ㅓ, ㅗ, ㅜ’와 이중 모음 ‘ㅑ, ㅕ, ㅛ, ㅠ’는 서로 다른 소리로, 그것만의 차이에 의해서 단어의 의미가 구분된다. 예를 들어서 ‘모기’와 ‘묘기’, ‘아기’와 ‘야기’는 각각 단모음과 이중 모음이라는 차이만 있으나 서로 다른 뜻을 나타낸다. ‘모기’를 써야 할 자리에 ‘묘기’를 쓰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이 ‘ㅈ, ㅊ’ 뒤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잠자리’를 [쟘쟈리]라고 발음하거나 ‘홍차’를 [홍챠]로 발음해도 뜻을 혼동할 소지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쥬스’, ‘챤스’ 같은 어형을 허용하지 않고 ‘주스’, ‘찬스’ 등으로 적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국어에서 ‘ㅈ, ㅊ’ 뒤에 이중 모음이 결합한 표기형은 전혀 쓰이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외래어가 아닌 고유어 표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반드시 ‘져’나 ‘쳐’ 따위를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1) 방에 가서 국어사전을 가져(*가저) 오너라.
(2) 뛰어가다 넘어져서(*넘어저서) 다리를 다쳤다.(*다첬다)

위의 예문에서 ‘가져’, ‘넘어져서’, ‘다쳤다’ 대신에 ‘가저’, ‘넘어저서’, ‘다첬다’를 쓰면 틀린 표기가 된다. ‘가져’, ‘넘어져서’, ‘다쳤다’로 적는 이유는 이들이 각각 ‘가지-+-어’, ‘넘어지-+-어서’, ‘다치-+-었다’가 줄어서 된 형태라는 것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즉 ‘다니어’가 줄어서 ‘다녀’가 되고, ‘막히어’가 줄어서 ‘막혀’가 되는 것처럼 ‘가져’는 ‘가지어’가 줄어진 말이라는 문법적인 관계를 보여 주기 위한 표기이다.
    그러나 외래어에는 이러한 문법적인 관계가 없으므로 굳이 발음상 구분되지 않는 ‘쥬’나 ‘챠’ 등으로 표기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쥬스’, ‘텔레비젼’, ‘챤스’, ‘피카츄’ 등은 모두 ‘주스’, ‘텔레비전’, ‘찬스’, ‘피카추’로 적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