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순화

법령문의 순화(1)

김문오(金文五) / 국립국어연구원

‘법령문(法令文)’이란 법령에 쓰인 문장을 가리키는데, ‘법문(法文)’이라고 하기도 한다. 법률에서 조목조목 나누어서 적어 놓은 조문을 가리킬 때는 ‘법조문(法條文)’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법령이란 법률과 명령을 함께 이르는데, 법률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하지만 명령은 국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행정 기관에서 공포한다는 점이 다르다.
    법령문은 일반 국민들이 읽어서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국가의 법은 마땅히 공용어를 규범에 맞게 바르고 쉽게 사용하여 국민의 언어생활에 귀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행 법령문은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귀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국민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 여기에서는 법령문 중에서 순화할 대상을 어휘 부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법령의 출처는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법’(1958년 2월 28일 제정, 1997년 12월 13일 개정)으로 정하였다.

(1)

法人의 理事, 監事 또는 淸算人은 다음 各號의 境遇에는 5萬원 以下의 過怠料에 處한다.
1. 本章에 規定한 登記를 懈怠한 때
2. 第55條의 規定에 違反하거나 財産目錄 또는 社員名簿에 不正記載를 한 때
3. 第37條, 第95條에 規定한 檢査, 監督을 妨害한 때
4. 主務官廳 또는 總會에 對하여 事實아닌 申告를 하거나 事實을 隱蔽한 때
5. 第76條와 第90條의 規定에 違反한 때
6. 第79條, 第93條의 規定에 違反하여 破産宣告의 申請을 懈怠한 때
7. 第88條, 第93條에 定한 公告를 懈怠하거나 不正한 公告를 한 때
<민법 제97조>

(수정문)

법인의 이사, 감사 또는 청산인은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5만원(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
1. 본장에 규정한 등기를 기일 안에(또는 제때에) 하지 않았을 때(…중략…)
4. 주무관청 또는 총회에 대하여 거짓을 신고하거나 밝혀야 할 사실을 숨겼을 때(…중략…)
6. 제79조, 제93조의 규정을 위반하여 파산선고의 신청을 기일 안에(또는 제때에) 하지 않았을 때
7. 제88조, 제93조에 정한 공고를 기일 안에(또는 제때에) 하지 않았거나 부정한 공고를 하였을 때

☞ 법제처에서 낸 “법령용어순화편람”(1994:270면)(이하 “편람”이라고 함)에서는 ‘해태(懈怠)하다’를 ‘게을리 하다’로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위 법령문에서 ‘등기·신청·공고 등을 게을리 하다’라고 표현하면 좀 자연스럽지 못하다. ‘해태(懈怠)’는 법률 용어로서 ‘어떤 법률 행위를 할 기일을 이유 없이 넘겨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는 일’을 뜻한다. 그러나 ‘해태(懈怠)’라는 단어는 일반 국민에게 너무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되므로 ‘(어떤 일을) 기일 안에 또는 제때에 하지 않는 것’이라고 풀어서 쓰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각목(各目)에서 ‘…한 때’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도 ‘…하였을 때’로 고치는 것이 한결 자연스럽다.

(2)

物件의 所有者가 그 物件의 常用에 供하기 爲하여 自己所有인 다른 物件을 이에 附屬하게 한 때에는 그 附屬物은 從物이다.
<민법 제100조 제1항>

(수정문)

물건의 소유자가 그 물건을 일상적으로 쓰편하게 하고자 자기 소유인 다른 물건을 이에 부속되게 하였을 때에는 그 부속물은 종속된 물건(從物)이다.

☞ ‘물건의 상용에 供하기 위하여’는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다. “편람”(29면)에서는 ‘(…에) 공(供)하다’를 ‘(…에) 제공하다/바치다/주다, (…에) 사용하다’로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위 법령문에서는 법제처에서 제시한 어떤 표현을 대치해 봐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供하기 위하여’의 글자대로의 뜻은 ‘이바지하기 위하여’이지만 위 문맥에선 그냥 ‘편하게 하고자(편리하도록)’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또한 ‘부속하게 한 때’라는 표현도 ‘부속되게 하였을 때’로 고치는 것이 한결 자연스럽다.

(3)

前項의 規定은 暴力 또는 隱秘에 依한 占有者에 準用한다.
<민법 제201조 제3항>

(수정문)

전항의 규정은 폭력으로 또는 몰래 점유한 사람에게 준용된다.

☞ ‘은비(隱秘)’는 ‘숨겨 비밀로 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일반 국민에게는 생소한 단어이므로 쉬운 단어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다. “편람”(172면)에서는 ‘은비(隱秘)’를 ‘숨김’으로 정비한 바 있다. 그런데 위 법령문에서는 ‘은비’ 자리에 ‘숨김’을 대치하면 ‘폭력 또는 숨김에 의한 점유자’가 되는데, 이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다. 그래서 ‘은비에 의한 점유자’는 ‘몰래 점유한 사람’이라고 고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이에 보조를 맞추어 ‘폭력 또는’ 부분도 ‘폭력으로 또는’이라고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항의 규정은 ∼ 점유자에 준용한다’라는 표현보다 ‘전항의 규정은 ∼ 점유한 사람에게 준용된다’라는 표현이, 법령의 문맥으로 볼 때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4)

承役地의 所有者는 地役權에 必要한 部分의 土地所有權을 地役權者에게 委棄하여 前條의 負擔을 免할 수 있다.
<민법 제299조>

(수정문)

편익제공지의 소유자는 지역권(地役權)에 필요한 부분의 토지소유권을 지역권자에게 이전하여 전조(前條:제298조)의 부담을 면할 수 있다.

☞ ‘지역권(地役權)’이란 자기 땅의 편익을 위하여 남의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리키는데 계약에 의해 성립한다. 그리고 ‘승역지(承役地)’는 지역권(地役權)에서 두 곳의 토지 중 편익을 제공하는 쪽의 토지인데, 예를 들어 어떤 토지의 통로로 이용되는 토지, 이웃 토지에 관개용수(灌漑用水)를 공급해 주는 토지 등이 승역지에 해당한다. ‘승역지’를 “편람”(134면)에서는 ‘편익 제공지’로 순화하였다. ‘승역지’라는 용어를 분석해 보면, ‘역(役)’에서는 ‘(나의) 수고로움, 노역→(상대방의) 편익’, ‘승(承)’에서는 ‘(내가 수고로움을) 받아들임→(상대방에게 편익을) 제공함’이라는 의미 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의미 도출 과정을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에는 대단히 어렵다고 판단된다.
    ‘위기(委棄)’의 뜻은 “① 버리고 돌보지 않음. ② [법] 자신의 토지가 상대편 토지의 편익을 위하여 제공되는 경우, 지역권(地役權)의 부담을 피하기 위하여 토지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하는 일.”이다[“표준국어대사전”(1999)]. “편람”(165면)에서는 ‘위기(委棄)하여’를 ‘버리고 돌보지 아니하여’로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 법령문에서는 ‘토지 소유권을 지역권자에게 버리고 돌보지 아니하여’로 대치하면 대단히 부자연스러워진다. ‘위기(委棄)’ 대신에 ‘이전’을 쓴다면 그 의미가 무난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편람”중 민법에 나오는 법령 용어들을 몇 개 더 제시해 보겠다.

몽리자(蒙利者)[→이익을 얻는 사람(이익 보는 이)]<233조>, 상린자(相隣者)[→이웃한 사람]<235조>, 심굴(深掘)하다[→깊이 파다]<241조>, 저치(貯置)[→저장]<244조>, 구거(溝渠)[→도랑]<244조>, 요역지(要役地)[→편익 필요지(편익 받는 땅)]<292조>, 자력(資力)[→자금 능력, 지급 능력]<427조>

법은 그 국가와 국민을 든든히 지켜 주는 공공의 약속이다. 그러나 법이 지나치게 어려울 경우에는 국민 대다수가 법을 제대로 지키기도 어렵고 법에 근거하여 자기의 권익을 제대로 주장하기도 어렵다. 앞으로 법령이 제정되거나 개정될 때에는 일반 국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바뀌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법령문의 순화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