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표기법의 이해

특수 용도의 로마자 표기법 -전자법(轉字法)-

김세중(金世中) / 국립국어연구원

2000년 7월 7일에 고시된 ‘로마자 표기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맨 끝 항인 제3장 제8항에 특이한 규정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3장 제8항은 다음과 같다.

학술 연구 논문 등 특수 분야에서 한글 복원을 전제로 표기할 경우에는 한글 표기를 대상으로 적는다. 이때 글자 대응은 제2장을 따르되 ‘ㄱ, ㄷ, ㅂ, ㄹ’은 ‘g, d, b, l’로만 적는다.
    음가 없는 ‘ㅇ’은 붙임표(-)로 표기하되 어두에서는 생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타 분절의 필요가 있을 때에도 붙임표(-)를 쓴다.

<보기>
집 jib 짚 jip 밖 bakk 값 gabs 붓꽃 buskkoch
먹는 meogneun 독립 doglib 문리 munli 물엿 mul-yeos 굳이 gud-i
좋다 johda 가곡 gagog 조랑말 jolangmal 없었습니다 eobs-eoss-seubnida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제3장 제8항의 규정이 그 전까지의 규정과 다름을 발견할 것이다. 우선 ‘집’이 그 앞의 설명에 따르면 jip로 표기되는데 제3장 제8항에 따르면 jib여서 차이가 난다. 말하자면 2000년 7월에 고시된 ‘로마자 표기법’(문화관광부 고시 2000-8호)은 하나의 표기법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 가지 표기법을 담고 있다. 즉 제3장 제8항은 별도의 로마자 표기법이다.
    그럼 왜 두 가지 로마자 표기법을 만들어 두었을까? 그것은 우리말이 놓인 특수한 사정 때문이다. 즉, 우리말을 적는 표기법인 한글 맞춤법의 특성 때문인데 한글 맞춤법은 잘 알려진 것처럼 소리 나는 대로만 적지 않고 형태를 밝혀 적는다. 예를 들어 ‘학문’은 [항문]으로 발음되지만 ‘학문’으로 적는다. ‘신라’는 [실라]로 발음되지만 ‘신라’로 적는다. ‘학’과 ‘문’, ‘신’과 ‘라’라는 형태소를 밝혀서 적기 때문이다.
    한글 맞춤법과 달리 로마자 표기법은 원칙적으로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 예를 들어 ‘학문’은 hakmun이 아니라 hangmun으로 적는다. ‘항문’ 역시 hangmun으로 적는다. 그 결과 hangmun은 ‘학문’을 적은 것인지 ‘항문’을 적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학문’이나 ‘항문’이나 모두 hangmun이기 때문이다. 로마자 표기법에서 ‘학문’과 ‘항문’을 똑같이 hangmun으로 적기로 한 것은 로마자 표기는 단어 전체의 발음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로마자 표기법대로 표기하면 원래의 한글 글자를 복원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로마자 표기를 통해 한글을 복원할 수 없다 해도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종로’를 Jongno로 적으면 자동적으로 ‘종로’를 복원하지 못할 뿐이지 상황이나 문맥을 통해 ‘종로’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특수한 전문 분야에서는 자동적으로 한글 복원을 반드시 해야 할 경우가 있다. 만일 도서관에서 소장 도서나 논문의 제목을 로마자로 기록해 둔다고 치자. 예를 들어 ‘젓는다’나 ‘젖는다’나 발음은 똑같이 [전는다]인데 발음대로 jeonneunda로 표기하면 jeonneunda에서 ‘젓는다’로 복원해야 할지 ‘젖는다’로 복원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이런 경우에는 한글 글자대로 로마자 표기를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즉 ‘젓는다’는 jeosneunda, ‘젖는다’는 jeojneunda로 적으면 한글 복원이 쉽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한글 표기를 대상으로 로마자 표기를 하는 방식을 전자법이라 하는데 제3장 제8항은 바로 전자법 방식의 로마자 표기법을 규정한 것이다. ‘전자법(轉字法)’에서 로마자 배당은 표음법의 것을 그대로 따른다. 다만 ‘ㄱ, ㄷ, ㅂ’과 ‘ㄹ’은 표음법에서 두 가지를 썼기 때문에 그 중의 한 가지인 g, d, b, l로 고정하였다. 예컨대 ‘각’을 표음법에서는 gak로 표기하는데 전자법에서는 gag가 된다. ‘싸릿골’은 표음법에서는 ssaritgol이 되고 전자법에서는 ssalisgol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