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의 이해

언 발에 오줌 누기

조남호(趙南浩) / 국립국어연구원

1592년 왜군의 침입으로 임진왜란이 시작된다. 그 다음 해, 즉 선조 26년(1593년)이 되면 기세가 꺾인 일본과, 타국에서 굳이 전쟁을 할 이유가 없는 명나라는 우리나라를 빼고 강화 협상을 진행하게 되고 우리나라 조정은 일본을 믿지 못하여 대책을 숙의한다. 그 자리에서 참판 심충겸은 다음과 같이 선조에게 아뢴다.

이 적(敵)이 본래는 중국을 침범하려는 것이었는데 중국의 장수들이 당장 편하려고 도리어 서로 강화하니 속담에서 말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은 일입니다.

<선조 26(1593)년 11월 21일>

100여 년이 지난 숙종 29년(1703년)이 되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통해 외적의 침입을 경험한 조정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북한산성을 쌓자는 논의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반대하는 신하들이 많았다. 신하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신하들이 성 쌓는 일에 반대하자 참고 있던 숙종은 화를 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로부터 전쟁은 풍년·흉년을 구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니, 반드시 굶주린 백성이 없는 뒤에 바야흐로 수비할 계책을 하려고 한다면 이것이 말이 되는가? 바다의 도적은 육지의 도적과 달라서 바닷길이 서로 이어졌으니 어느 날에 어떤 변고가 있을지 알지 못한다. 강화도는 갈 만한 땅이 못 되고 남한산성은 외롭게 떨어져서 또한 오래 머물 수 없으니 장차 어느 곳으로 가야 하겠는가? 지난 선조 임금 때에는 인심이 오늘날에 비길 바가 아니었는데도 나라의 한 모퉁이로 옮겨 가서 어렵고 곤궁함을 맛보았다. 하물며 시국이 위태롭고 국력이 약한 지금에 있어서랴. 만일 불행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흙처럼 허물어지는 근심이 있을 것이다. 무기고에 보관하고 있는 무기는 도리어 적이 사용할 것이고 도성의 백성은 모두 살해될 것이다. 이러한 때를 당하면 장차 어찌하겠는가? 큰 계책을 이미 정하였으니 천만 사람이 다투더라도 결단코 움직이기 어렵다. 중국에서 성 쌓는 것을 물어 온다면 내가 스스로 답변하겠다. 유생(儒生)은 물정이 어두워 후일의 염려를 생각하지 아니하니 속담에 이른바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하는 것에 가깝다.

<숙종 29(1703)년 4월 3일>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이 두 기사에서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속담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추운 겨울에 발이 꽁꽁 얼면 따뜻한 곳에 가서 녹여야 한다. 그런데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우선 급한 대로 언 발에 오줌을 눈다고 해 보자. 인간의 몸에서 나온 오줌은 따뜻해서 당장은 약간이나마 언 발을 녹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잠시 후 오줌이 차가워지면 발은 발대로 얼고 거기에 오줌의 찬 기운까지 합해져서 발은 더욱 꽁꽁 얼어 버릴 것이다. 여기서 유래한 속담이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잠시의 효력이 있을 뿐이고 곧 그 효력은 없어지고 더 나쁘게 되는 것을 뜻하는 속담이다.
    지금은 이 속담을 아는 사람이 드문 듯하다. 별로 주위에서 들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 속담 또한 지난 호에서 소개한 ‘관가 돼지 배 앓는 격’과 마찬가지로 꽤 오래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실록”뿐만 아니라 속담을 기록한 한적(漢籍) 문헌인 “순오지(旬五志)”, “송남잡지(松南雜識)”, ‘동언해(東言解)’ 등에도 ‘동족방뇨(凍足放溺)’라고 한문으로 번역되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