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의 이해

정지용의 시‘유리창(琉璃窓) 1’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琉璃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 것은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거니,)
고흔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새처럼 날러 갔구나!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朝鮮之光” 89호, 1930. 1.)

정지용(鄭芝溶, 1902∼1950·납북됨)은 우리 언어의 깊은 광맥을 찾아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로 대상의 선연한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한국 현대 시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보인 시인이다. 그의 시에 나오는 ‘유리창’은 집의 막힌 공간에서 유일하게 밖이 비치는 이중적인 공간이다. 계절은 겨울, 시간은 밤으로 시의 화자(話者)가 창가에 붙어 서니 유리에 어떤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내 입김이 닿자 그것은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날아다니는 물체. (언 날개는 비유적 표현으로 실은 유리창에 언 ‘성에’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실체가 무엇이든 날개 달린 물체의 비유로 이어진다.) 그 물체는 마치 바닷물에 떠밀려 오고 떠밀려 가듯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친다’. 날아다니는 물체가 강물에 떠밀려 가고 떠밀려 온다는 것은 생명력 자체의 버티는 힘이 다하였음을 말한다. 드디어는 그 물체가 정지하여 보석처럼 유리창에 박힌다(백히다:‘박히다’의 충청 방언). 생명이 다한 것이다.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지상에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유리창이란 중간적인 공간은 집 안과 집 밖을 연결하면서 단절하고, 생명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이어 주면서 끊어 주는 경계선의 공간이다. 시인은 안에서 밖이 비치는 유리창에 붙어 서서 이승과 저승을 생각하게 된다. 이 시와 관련된 일화에 따르면 시인이 자식의 죽음을 당하여 쓴 시라고 한다. 생명을 버리고 간 존재를 ‘山새처럼 날러 갔구나!’로 표현하면서 자식의 죽음을 결국 인정하는 시인의 독백이 느껴진다.
    시적 대상에 붙은 서술어만을 살펴보면 ‘어린거린다 → 파다거린다 → 밀려나가고 부디친다 → 백힌다 → 날러 간다’로 진행하고 있다. ‘어린거린다’는 형체의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물체를 말할 때 쓰는 서술어이다. 다음의 ‘파다거린다’는 좀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조류(鳥類)가 움직이는 서술형을 보여 주며, ‘밀려 나가고 부디친다’는 더 가까이 다가와 시각적(視覺的) 거리가 ‘영(零)’인 상태로 부딪기까지 하는 거리감을 보여 준다. 밀려 나갔다 부딪치는 왔다 갔다 하는 거리감은 결국 동작이 정지되어 한 곳에(유리창에) ‘백히게’ 되고 그 상태는 생명의 정지다. 그것을 뒤집으면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날러 가’ 버린 것이 된다.
    여기서 이 지상에 갇혀 있던 날개 달린 존재가 이 지상의 구속에서 풀리자, 즉 언 상태에서 풀리자 산새처럼 훨훨 날아가 버려서 생명의 실존적 구속을 벗어 버림을 볼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야 열매를 맺고 또 부딪치고 깨지고 변하는 유기체적 삶의 연속이다. 그 상태에서 죽는다는 것은 별 하나로 하늘에 ‘박혀 버림’이고 이 지상의 유한성을 벗어나 생 저 너머의 세계로 날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