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언어의 오용 사례

방정맞느냐? 방정맞으냐!

최혜원(崔惠媛) / 국립국어연구원

요즘 방송 3사의 네 개 채널에서 모두 사극이 방송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시청률에서도 이들 역사 드라마는 다른 프로그램을 크게 앞서고 있다. ‘역사 드라마의 전성 시대’라 부르더라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싶다.
    이번 호에서는 역사 드라마 중의 하나인 “○○ ○○”의 대사를 대상으로 잘못 사용된 어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내 말을 청으로 듣 명으로 듣 위협으로 듣 내일부터 물건을 풀지 않는 객주에 대해서는…. (능금이 혼잣말로)
(2) 지금 중전 마마를 뵙고 오는 길이드냐? (윤원형이 난정에게)
(3) 드디어 난정이가 나와 경빈 사이에 백척간두 허공에 매어 놓은 줄에 올라서서 외줄을 타려 함이든가. (문정왕후가 혼잣말로)

‘-든’과 ‘-던’은 일상 언어에서 많이 혼동되는 예이다. 비록 발음이 비슷하여 뚜렷이 구분이 안 된다고 하지만 ‘-든’과 ‘-던’은 각각의 의미와 용법을 갖는 별개의 어미이기 때문에 반드시 가려 쓸 필요가 있다.
    여러 동작이나 상태, 대상을 나열하면서 이것들 중 어느 것이든 선택할 수 있음을 나타낼 때에는 ‘-든(-든지, -든가)’을 써야 한다. (1)은 ‘청으로 듣는 것’, ‘명으로 듣는 것’, ‘위협으로 듣는 것’ 중에서의 선택을 의미하므로 ‘듣던’이 아니라 ‘듣든’을 쓰는 것이 맞다. 반면에 과거와 연관된 뜻이 있는 ‘-던’은 연결 어미로 쓰이지 않고 ‘전에 다니던 길’, ‘삼단같이 곱던 머리’처럼 관형사형 전성 어미로 쓰이든가 ‘그가 언제 왔던?’과 같이 의문형 종결 어미로 쓰일 뿐이다.
    (2)는 지난 일에 대해 묻는 상황이므로 이때는 선어말 어미 ‘-더’를 써서 ‘길이더냐’로 말해야 옳다. 한편 (3)은 (2)와 성격이 다르다. 시제를 따져 볼 때 (3)에서 ‘외줄을 타려는’ 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고 현재 이후에 벌어질 상황이므로 과거의 일을 묻는 종결 어미 ‘-던가’를 쓰는 것은 적절치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줄을 타려 함인가’ 정도로 고쳐야 옳다.

(4) 사대부가(士大夫家) 규수의 행실이 어찌 이리 방정맞느냐? (정윤겸이 딸 옥련에게)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냐, -으냐, -느냐’는 앞에 오는 어간의 종류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여 써야 한다. 위 문장에서 쓰인 ‘-느냐’는 ‘있다’, ‘없다’를 제외하면 형용사의 어간 뒤에 올 수 없고 주로 ‘먹느냐’, ‘자느냐’와 같이 동사의 어간 뒤에 온다. 그러므로 형용사 ‘방정맞다’에 ‘-느냐’가 붙은 것은 바른 결합이 아니다. 형용사 어간 뒤에는 ‘-냐’, ‘-으냐’가 오는데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형용사 어간에는 ‘-으냐’가(예:좋으냐, 높으냐, 작으냐) 그 외 ‘ㄹ’ 받침과 모음으로 끝나는 형용사 어간에는 ‘-냐’가 결합한다.(예:머냐, 슬프냐) 따라서 (4)에서는 ‘방정맞으냐’가 맞다.
    다른 드라마에 비해 사극은 어려운 한자어 등이 많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정치, 경제, 문화 용어가 많이 사용되기에 정확한 대사 전달이 특히 중요하다. 그만큼 연기자들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을 기한다. 그러니 가끔 들리는 잘못된 말들은 더더욱 옥에 티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