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표기법의 이해

인명, 회사명, 단체명의 로마자 표기

김세중(金世中) / 국립국어연구원

2000년 7월 7일 고시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제3장 7항은 다음과 같다.

인명, 회사명, 단체명 등은 그동안 써 온 표기를 쓸 수 있다.

이 조항이 의미하는 것은 인명, 회사명, 단체명 등의 경우 새 로마자 표기법에 맞게 반드시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동안 써 온 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인명은 사람 이름을 말하고 회사명은 삼성, 현대, 쌍용, 한진 등과 같은 기업명을 말한다. 단체명은 주로 학교명을 가리킨다.
    인명, 회사명, 단체명에 대해 그동안 써 온 대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명의 대표적인 사용처는 여권인데 수백만 명에 이르는 여권 소지자들 가운데는 지금 가지고 있는 여권의 인명 표기가 새 표기법에 맞지 않는 사람이 맞는 사람보다 더 많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써 온 표기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수백만 명이 단지 인명 표기를 새 표기법에 맞추기 위해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 물론 여권이란 주기적으로 새로 발급받아야 하므로 새로 발급받을 때에 표기법에 맞게 표기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은 여권에만 써 온 것이 아니어서 이름을 바꾸는 것은 개인들의 불만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미 써 온 이름으로 외국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새 이름을 쓰면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반발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부터 새 표기법대로 정연하게 표기하도록 이끄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회사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삼성은 Samsung으로 현대는 Hyundai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새 표기법에 맞게 Samsung를 Samseong로, Hyundai를 Hyundae로 바꿀 경우 삼성, 현대가 치러야 할 비용은 막대할 것이다. Samsung을 Samseong로 바꾸니 Samseong가 곧 Samsung임을 홍보하는 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다. Samsung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 Samseong로 바꾼다면 왜 바꾸는지 외국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기업 활동은 이윤 추구가 목적인데 단순히 비용만 들 뿐인 일을 정부가 기업에 권하기는 어렵다.
    단체명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학의 경우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하기 때문에 학교명을 영어 등으로 써 온 역사가 깊다. 이화여대의 경우 Ewha, 연세대의 경우 Yonsei, 고려대의 경우 Korea와 같은 표기는 과거 어떤 표기법과도 맞지 않지만 표기법과 상관없이 각 학교에서는 그렇게 써 왔다. 이런 학교 이름의 표기 또한 오랜 전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wha, Yonsei, Korea를 Ihwa, Yeonse, Goryeo로 바꾸는 데 드는 홍보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도 아니고 표기가 달라짐으로 말미암아 외국인들이 겪을 혼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에서 든 이유들로, 인명, 회사명, 단체명 등은 그동안 써 온 표기를 쓸 수 있게 규정하였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지명은 인명, 회사명, 단체명 등과 달리 예외 없이 새 로마자 표기법에 맞게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명, 회사명, 단체명도 새로 만들어지는 이름은 새 표기법을 따르도록 적극 권장한다는 것이다.
    지명의 경우에도 그동안 써 온 표기를 계속 쓰기를 희망하는 지방 자치 단체가 적지 않이 있었다. 부산, 제주 등의 경우 Pusan, Cheju로 널리 알려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Pusan, Cheju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서 그렇게 쓸 수 있게 한다면 부곡, 진주 등도 마찬가지로 Pugok, Chinju로 쓰게 해야 한다. 부곡, 진주 등도 부산, 제주나 마찬가지로 그동안 Pugok, Chinju로 국내외에서 써 왔기 때문이다. 결국 지명의 경우 예외를 둘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마침 수도 서울의 Seoul도 우연히 새 로마자 표기법에 맞으니 지명은 예외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새삼 강조할 것은 기존의 인명, 회사명, 단체명에 한해 그동안 써 온 표기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이름에 대해서는 새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는 것만이 외국인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도 편리하고 유익한 길이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 검색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로마자 표기법은 모두가 지키고 따를 때 우리에게 편리와 이익을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