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쓰기

상황과 문장 요소의 생략

박창원(朴昌遠) / 이화여자대학교

친구와 둘이서 중국집에 갔다고 하자. 한 친구가 “나는 자장면 먹을래.”라고 한 후, 상대편에게 “너는?” 하고 묻자, 그 상대편은 “나도 자장면이야.”라고 한다. 끝 문장을 영어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영어를 잘 알지 못하지만 대충 번역해 보면 “I am a jajangmyeon, too”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번역을 해 놓고 보면 한국어의 “나도 자장면이야.”라는 표현은 대단히 비논리적인 표현이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자장면이라면, 사람이 먹는 음식에 불과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나도’는 ‘내가 먹고자 하는 것도’ 혹은 ‘내가 주문하고자 하는 것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누가’와 ‘무엇’이고, 그 외의 것은 별다른 중요성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한국인의 인식이 언어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인은 상황에 따라 문장의 일부분을 생략하기도 하고, 긴 것을 아주 간단하게 축약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말은 ‘상황 중심의 언어’ 혹은 ‘상황 의존적 언어’라고 한다. 상황 중심의 언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예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에 방문을 열어 놓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은 “여보시오, 문 좀 닫고 들어오시오.”라고 표현한다. 문을 닫는 행위를 들어오는 행위보다 먼저 하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은 들은 외국인은 특히 서양인들은 한국인의 사고 구조나 문장 구조에 대해 대단히 의심스러워할 수도 있겠다. 투명 인간이나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는 신기한 기계 인간이 아닌 이상, 문을 닫은 후에 들어 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런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것은 한국인들은 그 상황에서 ‘한 개인의 출입’보다 ‘문을 닫는 행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중요한 것을 앞에 두어서 ‘강조하거나 초점을 맞추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고, 이것이 한국인의 언어 수행에 반영되어 언어 관습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이른바 이중 주어문을 쓸 수 있다는 것인데, 이중 주어문이 발생한 것도 우리말이 상황 중심으로 표현하는 관습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코끼리는 코가 길다.”라는 문장에서 ‘코끼리는’은 ‘코끼리라는 동물은’ 혹은 ‘코끼리라는 동물에 대한 정보 중의 하나를 말하면’ 등을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에 대해 말하는 상황에서 특정의 동물 이름만 이야기하면 충분히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다는 상황 인식이 정보 전달의 기능 부담량이 적은 부분을 생략하게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저 건물이 삼층이 높다.”라는 표현도 동일할 것이다. ‘저 건물에 대한 정보는’ 등등의 표현이 ‘저 건물이’로 표현되는 것도 최소의 표현으로 의사 전달을 하려는 욕구와 맞물려 생략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서는 “저 건물부터 짓자.”에서처럼 격 조사와 특수 조사가 결합할 때 격 조사를 생략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 역시 문장의 문맥적인 상황으로 격을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조사가 길게 늘어질 경우 정보 전달의 기능을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생략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것처럼 우리말에는 상황에 따라 문장의 구성 요소 중 일부를 과감하게 생략하는 특징이 있지만, 생략하면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문장은 서술어의 종류에 따라 반드시 있어야 할 성분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하는 시대다.”라는 표현은 서술어에 호응하는 주어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문장인 것이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기술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