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의 이해

관가 돼지 배 앓는 격

조남호(趙南浩) / 국립국어연구원

관가 돼지 배 앓는 격’. 지금은 이 속담을 듣기가 쉽지 않지만 꽤 오래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던 속담이다.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선조실록’에 무려 여섯 번이나 나온다. 더구나 여섯번 모두 임금인 선조가 직접 인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조선왕조실록”뿐만 아니라 속담을 기록한 한적(漢籍) 문헌에서도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한적 문헌들은 한문으로 된 문헌들이어서 ‘관저복통(官猪腹痛)’이라고 나오기는 하지만 이 속담을 번역한 것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최근에 나온 속담 사전들에도 ‘관가 돼지 배 앓는 격’은 수록되어 있다. 예전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속담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다.
그 뜻은 무엇일까? 이 말은 ‘관가의 돼지가 배를 앓거나 말거나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뜻으로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어서 아랑곳하지 않을 때 쓰는 속담이다. 이 속담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아보고자 실록에서 두 예만 옮기도록 한다. 국어로 번역하면서 읽기 쉽게 각색하였다.

■ 예 1
선조:나라 안에서 창궐하는 도적이 걱정스럽다.
이항복:명군(明軍)이 철수하면 도적이 수가 적어도 체포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1594년에 호남에 가 있었는데 큰 변이 생길 뻔했습니다.
선조:그것이 무슨 말인가? 듣지 못했다.
이항복:많은 백성들이 도적이 되어 고을을 포위한 적이 있습니다. 관군(官軍)이 여러 번 토벌하려고 하였으나 도적에게 번번이 졌습니다.
선조:가난이 극에 달하면 황소(黃巢) 같은 도적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명군이 우리를 못살게 굴었지만 도적을 진압한 것은 그들의 공로이다. 명군이 철수하면 우리는 서울조차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군인이 되기를 싫어하는데 몸은 고달프면서도 보수가 적은 탓이다. 군대는 잘 먹여서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모두에게 보수를 후히 지급하여 임무를 맡겨야지 관가 돼지 배 앓는 격으로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선조 33(1600)년 1월 29일 선조와 신하가 나눈 대화 중에서>
■ 예 2
선조:우리나라 사람은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말만 잘할 뿐이다. 1602년 명나라에서 사신이 왔을 적에 쓰던 장막과 상을 잘 보관하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다 잃어버렸다. 명나라 사신이 탐욕스럽기로서니 어찌 상을 가지고 갔을 리가 있겠는가? 장막은 상급 관청에서 가져갔다는데 가져다 쓰면 반납해야 하나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른다. 관리가 일을 하는 태도가 이래서야 앞으로 어디에 쓰겠는가?
홍식:장막은 평상시에는 열쇠지기가 담당하여 출납하므로 잃어버릴 염려가 없었다고 합니다. 명나라 사신이 돌아간 뒤에 이번에도 평상시대로 열쇠지기가 간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김신원:장막은 홍식이 아뢴 대로 하겠으나 명나라 사신이 왔을 때 사용하는 잡다한 물건은 접대를 담당하는 관청에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조:옛 임금 때는 종이 한 장 때문에도 죄를 받았으니 그렇게 보면 오늘날은 모두가 죄인이다. 관청에서 만든 물건이 매우 많은데 많은 물건들이 간 곳이 없다. 속담에 관가 돼지 배 앓는 격이란 말이 있는데 말은 천박하지만 비유는 아주 적절하다. 관가의 돼지가 배 앓는 것을 남이 누가 잘 치료해 주겠는가? 우리나라의 일이 바로 이런 꼴이다.
<선조39(1606)년 2월 12일 선조와 신하가 나눈 대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