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정보화

지식 정보화 사회와 한국어

이승재(李承宰) / 국립국어연구원

현대는 정보의 생산 주체가 사회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정보화 사회이다. 최근 들어 ‘지식 정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는 것도 인간 생활의 이러한 면을 반영한 것이다. 지식 정보화 사회는 인간이 지식의 형태로 나타낸 창의적인 정보들이 구체적으로 체계화되어 사회를 이끌어 가는 핵심 요소로 등장하게 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지식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지식 정보화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주도 세력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 종속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 정보는 대부분 자국의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에 주도적인 언어(주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은 양의 지식 정보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데 비해 그 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경쟁에서 뒤떨어질 소지가 많아졌다. 중세 이전의 인간 사회는 영토와 무력을 매개로 한 지배와 종속 관계를 만들었고 근대 이후로 넘어오면서 나타나게 된 산업 사회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지배와 종속 관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의 지식 정보화 사회는 특정 언어를 바탕으로 한 지식 정보를 자원으로 하여 또 다른 형태의 지배와 종속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 미래학자들은 21세기를 거치면서 지구 상에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언어는 10여 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이 예측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 중 문자를 가지고 있는 100여 개의 언어는 10여 개로 줄어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용 인구로 보아 전 세계에서 10위권에 있는 한국어도 그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미래학자들의 이러한 예측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미래학자들의 이러한 예측은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하여 국가 간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면서 세계 각국의 언어가 체계의 효율성을 위하여 몇몇 언어만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만일 컴퓨터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만들어진 지식 정보를 자동으로 번역해 주게 되면 그렇게 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진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의 언어는 그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현재와 같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예측 가운데 어느 것이 타당한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지식 정보화 사회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 나가느냐이다. 산업 사회에서 경제 종속이 문제가 되었듯이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 종속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 종속을 벗어나기 위해 국어 정보화를 앞당겨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가 외국에서 가져오는 정보의 양이 외국에서 우리의 정보를 가져가는 양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한국어의 세력도 넓히기 위해서는 한국어로 된 유용한 지식 정보를 많이 만들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바로 국어 정보화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결정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만드는 골격이 된다. 그래서 언어의 소멸은 문화의 소멸을 가져오게 된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지식 정보의 생산, 분배가 각 나라마다 골고루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 세계의 언어와 문화는 그 특성을 잃어버리고 획일화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는 문화의 다양성을 기초로 하여 지식 정보를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한국 문화를 다양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한국어로 된 지식 정보의 활발한 생산과 가공 및 축적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한국어 지식 정보를 체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