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휘

‘부디’와 ‘제발’


이정미(李正美) / 전 국립국어연구원 사전편찬원

‘부디’와 ‘제발’은 대체로 ‘바라는 바가 간절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일반인들은 두 말의 차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두 단어의 쓰임을 살펴보면 엄밀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부디’는 ‘바라건대’, ‘될 수 있는 대로’의 뜻으로, 남에게 무엇을 청하거나 부탁할 때 그것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의 구체적인 쓰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ㄱ. 모임에 부디 참석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ㄴ. 부디 제위에 오르소서.
ㄷ. 부디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ㄹ. 작은 것이오니 부디아 주십시오.
(2) ㄱ. 부디 잘 다녀오너라.
ㄴ.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ㄷ. 부디 대공을 이루세요.
ㄹ. 부디 조심해라.

(1)과 같이 비교적 격식을 갖춘 표현에서는 ‘부디’가 더 자연스럽다. 이는 격식성이 ‘부디’의 쓰임을 특징짓는 한 요소가 됨을 말해 준다. 그렇다고 ‘부디’가 격식적인 표현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2)는 격식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부디’가 더 자연스럽다. 이는 상대를 위한 당부나 축원을 하는 경우인데, 내용이 상대를 배려하는 것인 만큼 그 표현이 직설적이기보다는 완곡하다. 따라서 절실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절제된 면이 있다. 이로 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내용 또한 ‘부디’의 쓰임을 특징짓는 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표현에 있어 격식을 갖추는 것 역시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형식과 내용 모두 상대에 초점이 놓여짐을 알 수 있다.
   한편, ‘제발’은 ‘간절히 바라건대’라는 뜻으로, 바라는 마음이 아주 간절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의 쓰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3) ㄱ. 제발 살려 .
ㄴ. 무서운 얘기는 제발 그만둬.
ㄷ. 제발 우는소리 그만하세요.
ㄹ. 제발.
(4) ㄱ. 제발 모임에 참석 하시오.
ㄴ. 제발 먹을 것 주십시.
ㄷ. 제발 정신 차리세요.
ㄹ. 제발 우리 딸 살려 줍쇼.

(3)과 같이 격식을 갖추지 않은 표현에서는 ‘제발’이 더 자연스럽다. 이는 ‘비격식성’이 ‘제발’의 쓰임을 특징지을 수 있는 한 요소가 됨을 말해 준다. ‘제발’ 역시 비격식적인 표현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4)에서는 격식성의 유무와 상관없이 ‘제발’이 더 자연스럽다. 부탁을 할 때 말을 부드럽게 고르기 위하여 삽입하는 ‘좀’은 ‘제발’과 더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는 격식성의 유무뿐만 아니라 ‘좀’의 존재 여부가 ‘제발’과 ‘부디’의 쓰임을 구분하는 한 기준이 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4)는 아주 간절하게 부탁하는 경우인데, 이는 주로 말하는 이의 기대 관철 의지가 크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의 기대에 대한 의지(또는 애착)’가 더 크므로 그 표현이 직설적일 수밖에 없다. 그 절실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기대에 대한 의지가 크다는 것은 초점이 상대에게 놓이지 않고 말하는 이에게 놓였음을 의미한다.
   이상으로 볼 때 ‘부디’와 ‘제발’은 당부나 부탁의 표현 형식(격식/비격식)이나 표현 내용(상대를 위한 배려/말하는 이의 의지)에 따라 그 쓰임을 구분 지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당부나 부탁의 형식이 격식을 갖추거나 그 내용에 대한 화자의 의지 정도가 작으면 ‘부디’가 더 자연스럽게 쓰이는 반면, 당부나 부탁의 형식이 비격식적이거나 그 내용에 대한 화자의 의지 정도가 크면 ‘제발’이 더 자연스럽게 쓰인다. 결국 ‘제발’은 ‘부디’보다 ‘간절함’의 정도를 더욱 더 크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