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손 돌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우리가 쓰고 있는 단어 중에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쓰이고 있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또 그중에는 본래의 의미를 완전히 잃고 전혀 엉뚱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도 있다. 겨울 날씨와 관련해서 우리가 자주 쓰는 ‘손돌이추위’와 ‘손돌이바람’(또는 ‘孫石風’)이라는 표현의 ‘손돌’도 바로 그와 같은 성격의 것이다.
   사전을 보면 ‘손돌이추위’는 ‘음력 시월 스무날의 심한 추위’, ‘손돌이바람’은 ‘손돌이추위 때 부는 매서운 바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러한 풀이에 다음과 같은 그럴듯한 전설을 덧붙이고 있다.

고려 시대에 몽고 군이 쳐들어오자 왕은 강화도로 몽진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때 ‘손돌(孫乭)’이라는 뱃사공이 배를 몰게 되었다. 그런데 배가 어떤 지역에 이르자 바다가 막히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임금은 뱃사공과 적이 내통한다고 의심을 하여 ‘손돌’의 목을 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손돌’은 자기 목을 베어도 좋으니 자기 소원을 하나 들어 달라고 하였다. 그 소원은, 뒤웅박 하나를 배 앞에다 띄운 다음 그 뒤웅박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라는 것이었다. 성미 급한 왕이 ‘손돌’의 목을 베고 손돌이 이른 대로 뒤웅박을 따라 배를 저어 가니 바다가 확 터지는 곳이 나왔다. 왕은 실수를 후회하며 손돌을 가까운 산모퉁이에 묻어 주었다. 해마다 ‘손돌’이 죽은 날이면 심한 바람이 일고 추워진다고 한다.

이 전설에 의하면 ‘손돌’은 ‘손(孫)’씨 성을 가진 ‘돌(乭)’이라는 이름의 뱃사공이 된다. 전설의 속성이 거의 그렇듯이 이 전설도 확인할 수 없는 허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손돌’이 뱃사공의 이름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결론적으로 ‘손돌’이라는 단어는 뱃사공 ‘손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손돌’이 뱃사공 ‘손돌’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손돌’이라는 단어가 포함하고 있는 구성 단어들의 의미를 추출해 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손돌’의 ‘손’은 ‘좁다’는 의미를 지니는 ‘솔다’라는 형용사의 관형사형이며 ‘돌’은 ‘바다의 좁은 목’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솔다’는 ‘저고리 품이 솔다’는 표현에서, ‘돌’은 ‘울돌〔鳴梁〕’이라는 해협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손돌’의 본래 의미는 ‘바다의 좁아진 목’이 된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손돌〔窄梁〕’이 바로 그곳인데, 경기도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와 김포군 대곶면 송마리 사이에 있는 물목이다. 이곳은 폭이 좁고 물이 감돌아 물살이 세고 빠르기로 유명하다.
   ‘손돌’의 의미가 분명해진 이상 ‘손돌이추위’와 ‘손돌이바람’의 본래 의미도 쉽게 드러난다. ‘손돌이바람’은 물살이 센 ‘손돌’에서 부는 매서운 바람이고, ‘손돌이추위’는 센 바람으로 인해 ‘손돌’에서 발생하는 심한 추위라는 뜻이다.
   ‘손돌이추위’와 ‘손돌이바람’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변한 것은 이 단어를 구성하는 ‘손돌’이라는 단어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엉뚱하게 ‘손(孫)’씨 성을 가진 ‘돌(乭)’이라는 이름의 뱃사공으로 둔갑하였기 때문이다. ‘손돌’을 ‘손돌(孫乭)’과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첫 음절이 ‘손(孫)’씨라는 성과 일치하고 ‘쇠돌’, ‘차돌’에서 보듯 우리 이름에 ‘돌’이라는 이름이 흔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손돌’에 대한 빗나간 해석은 ‘손돌이추위’와 ‘손돌이바람’에 엉뚱한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전설을 맹신한 나머지 ‘손돌’의 묘를 만들고 그 넋을 기리는 사당(祠堂)까지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로까지 발전하였다. 지금도 경기도 김포에 가면 ‘손돌’의 묘와 사당이 우스꽝스럽게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