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아침·점심·저녁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의 세 시간대로 구분된다. 날이 새면서부터 오전 반나절쯤의 사이를 ‘아침’이라 하고,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오기까지의 사이를 ‘저녁’이라 한다. ‘점심’은 딱히 어느 시간대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정오’를 기준으로 그 앞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침’이라는 단어는 15세기의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이때에는 ‘아’으로 나온다. ‘아’이라는 단어는 ‘앛-’과 ‘-’으로 분석된다. ‘앛-’은 문헌에 자주 나타나지는 않지만 ‘적다’, ‘작다’, ‘드물다’, ‘이르다’, ‘시작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다’라는 형용사의 어간이다. ‘아설날’(작은설), ‘아아’(조카)의 ‘앛-’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은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다. 선행 요소 ‘앛-’의 의미를 고려하면 ‘아’은 ‘이른 것’, ‘시작하는 것’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아’이라는 시간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에 ‘아침밥’이라는 구체적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시간 개념’이 ‘대상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아’에 ‘아침밥’이라는 ‘대상 개념’이 생겨난 시기는 잘 알 수 없다.
   15세기의 ‘아’은 ‘ㆍ>ㅡ’ 변화에 따라 16세기 이후 ‘아츰’으로 변하였다가 다시 ‘ㅡ>ㅣ’의 변화에 따라 19세기 이후 ‘아침’으로 변하였다.
   ‘점심’이라는 단어도 이른 시기의 문헌에서 확인된다. 16세기의 “순천김씨언간”에 ‘뎜심’으로 나온다. ‘뎜심’은 본래 ‘點心’이라는 불교 용어였다.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정식(定食) 전에 마치 공복에 점을 찍듯이 먹는 간식을 ‘뎜심’이라고 하였다. ‘뎜심’이 일반 사회에 전입되어 쓰이면서 지금과 같은 ‘낮에 먹는 끼니’라는 일반적 의미가 생겨났다. 이어서 ‘그 끼니를 먹는 시간’이라는 의미도 생겨났다. ‘대상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바뀐 경우이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는 잘 알 수 없다.
   16세기의 ‘뎜심’은 구개음화에 의해 18세기 이후 ‘졈심’으로 쓰이다가 단모음화에 의해 지금과 같은 ‘점심’으로 변하였다.
   ‘저녁’이라는 단어는 ‘아침’이나 ‘점심’과는 달리 좀 늦은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저녁’은 17세기 문헌인 “역어유해”에 ‘져녁’으로 처음 보인다. 이 ‘저녁’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녁’이 방향을 뜻하는 명사인 것은 분명한데, 이것에 선행하는 ‘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져녁’을 동사 어간 ‘져믈-’ 또는 ‘졈글-’에 ‘녁’이 결합된 ‘졈글녁’이나 ‘져믈녁’이 줄어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ㅁ글-’과 ‘-믈-’이 생략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해석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한편, ‘져녁’이 ‘뎌녁’으로부터 변했다고 보기도 한다. ‘뎌녁’은 15세기 문헌에서 ‘彼坊’ 즉, ‘저쪽’이라는 ‘공간 개념’으로 쓰였다. ‘공간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져녁’이 ‘뎌녁’으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도 있으나 ‘뎌녁’에서 ‘夕’의 의미가 확인되지 않고 ‘져녁’의 이른 시기의 어형이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두 단어 사이의 관계를 섣불리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17세기 이전에는 ‘夕’의 뜻으로 ‘나조ㅎ’이나 ‘나죄’가 일반적으로 쓰였다. ‘아’과 어울려 ‘아나조ㅎ’ 또는 ‘아나죄’와 같은 합성어를 만드는 데까지 이용된 것으로 미루어 이것이 특정 시기에 상당한 세력을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17세기 이후 문헌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18세기 이후 ‘저녁’에 밀려나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북부 방언 ‘나죄’, ‘나주악’ 등에서나 확인된다.
   ‘져녁’도 특정 시간대를 가리키다가 그 시간대에서 먹는 음식 즉, ‘저녁밥’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시간 개념’이 ‘대상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이 또한 그 의미 변화의 시기를 알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단어 중 ‘아침’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불교 용어에서 전용된 ‘점심’이 그 다음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17세기 이후에 등장한 ‘저녁’이 가장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