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엽기적(!)이에요
권순엽(權純燁) / 번동중학교
얼마 전 우리 학교의 체육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해 왔다. “권 선생님, ‘엽기적’이라는 것이 별로 안 좋은 뜻 아니에요?”. 얘기인즉, 체육 시간에 농구를 하는데 장거리 슛을 성공시켰더니 애들이 “선생님, 농구를 엽기적으로 하시네요.” 그러더란다. 아닌 게 아니라 나에게도 수업 시간에 시쳇말로 좀 썰렁한 농담을 했더니 “선생님, 엽기적이에요.”라고 하던 경우가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어란 늘 있기 마련이어서 아이들이 몇 번 이 말을 쓰는 것을 보고도 그냥 유행어로 쓰는 것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다가, 한번은 몇 학생을 지적하여 ‘엽기적’이라는 말의 뜻을 아느냐고 물어 봤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학생은 거의 없고, 어떤 학생은 놀랍고,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뜻이 아니냐고 얘기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여 엽기적이라는 말의 뜻을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 줬더니 그런 뜻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재미로 쓰더라도 정확한 뜻은 알고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학생들 대부분은 엽기적이라는 말을 인터넷이나 방송(주로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거나 들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인터넷에서 ‘엽기 사이트’니, ‘엽기 사진’이니, ‘엽기 토끼’ 등, ‘엽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방송에서도 심심치 않게 ‘엽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인터넷이든 방송이든 둘 다 학생들의 언어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이 영향이라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인터넷도 인터넷이지만 특히 방송 오락 프로그램에서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문제는 이미 전부터 지적을 받아 왔다.
언제부터 오락 프로그램에 우리말 자막을 내보내기 시작했는지, 왜 자막을 내보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시각 장애인에 대한 배려일까?) 내보내는 우리말 자막이라는 것이 때로는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꺾다’를 ‘꺽다’로 쓴다든지, ‘안 돼’를 ‘안 되’라고 쓴다든지, ‘떼다’를 ‘띠다’로, ‘삼가다’는 ‘삼가하다’로, ‘안 하다’는 ‘않 하다’로, ‘바람(희망)’은 ‘바램’으로, ‘하늘을 나는’은 ‘하늘을 날으는’으로 쓰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만만찮을 정도로 나름대로 맞춤법을 재창조(?)하고 있다. 꼭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다른 종류의 프로그램에서도 발견되는 일이지만 오락 프로그램에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학생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틀린 자막을 내보내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이곳저곳에서 따가운 비판을 많이 내보내고 있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제는 맞춤법이 틀리는 수준을 넘어 아예 그 의미를 헷갈리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괴함, 이상함, 추함, 비정상적임’ 등의 의미를 갖고 있던 ‘엽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재미있음, 우스꽝스러움, 신기함, 신선한 충격’ 등의 의미를 가진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의미가 그런 줄로 알고 재미있다고 쓰고 있다. 누군가는 그저 재미로 쓰는 것이니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전혀 엉뚱한 뜻으로 착각하고 사용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이건 재미로 그러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도 괜찮은 문제인지는 의문스럽다.
방송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방송은 여러 부분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말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방송이 우리말을 온전히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해 주길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