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사   냥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사냥’은 원시 사회에서야 식량 해결의 절실한 수단으로 행하여졌지만, 고대 국가 이후에는 왕족을 비롯한 상류 계층의 매력적인 놀이와 운동으로 행하여졌다. 평남 강서에 있는 고구려 고분의 ‘수렵도(獸獵圖)’, 조선 시대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호렵도(虎獵圖)’를 보면, ‘사냥’이 얼마나 상류층 남성들의 호사스러운 소일거리였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들 ‘수렵도’나 ‘호렵도’를 보면, 호화롭게 치장한 말을 탄 사냥꾼들이 표적을 쫓다가 적당한 거리에서 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 있다. 그림의 배경은 예외 없이 험준한 산야이다. ‘사냥’이 주로 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냥’이라는 단어는 사냥이 ‘산’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임을 잘 나타내 준다.

‘사냥’은 15세기 문헌에 ‘산’으로 나온다. 이것은 한자어 ‘산행(山行)’에 대한 현실 한자음이다. ‘산’이 ‘山行’이라면 이것은 ‘산으로 가는 것’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다. ‘사냥’이 산야를 누비며 화살이나 창을 이용하여 짐승이나 새를 잡는 행위이므로, ‘山行’을 해야 사냥을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산길을 가는 것’, 즉 ‘山行’의 목적은 주로 짐승이나 새를 잡기 위한 것이므로 ‘山行’에 ‘짐승이나 새를 잡으러 가는 일’, 즉 지금의 ‘사냥’이라는 의미가 결부될 수 있었을 것이다.

15세기의 ‘산’이라는 단어는 17세기 이후 문헌에는 ‘산영’으로 바뀌어 나온다. ‘산’에서 ‘산영’으로의 변화는 비교적 현저한 음운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제2음절의 두음 ‘ㅎ’이 탈락하고 모음 ‘ㆎ’가 ‘ㅕ’로 바뀌였기 때문이다. “동문유해(1748)”에 ‘산영개’라는 단어까지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17세기와 18세기에는 ‘산영’이 일반적인 어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영’이라는 단어는 19세 말 문헌에는 ‘산양’으로 바뀌어 나온다. “한불자전”(1894), “한영자전”(1897) 등에서 ‘산양’이라는 단어가 확인된다. ‘산양’은 ‘산영’이 제1음절의 모음에 영향을 받아 제2음절의 모음이 양성모음화한 어형이다. ‘산영’이 ‘산양’으로 바뀌다 보니 ‘산영개’도 ‘산양개’로, ‘산영군(사냥꾼)’도 ‘산양군’으로 바뀌어 나온다. 19세기 말의 ‘산양’은 20세기 초의 “조선어사전”(1920)에도 그대로 나온다. 단지 ‘산양개’가 ‘산양ㅅ개’, ‘산양군’이 ‘산양ㅅ군’ 식으로 아주 독특하게 표기되어 나올 뿐이다. ‘산양’은 문세영 저 “조선어사전”(1938)에 와서야 지금과 같은 ‘사냥’으로 나온다. 더불어 ‘산양개’도 ‘사냥개’로 나온다.

이로 보면 15세기의 ‘산’은 17세기의 ‘산영’을 거쳐 19세기의 ‘산양’을 지나 20세기 초의 ‘사냥’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산’이 ‘사냥’으로까지 변한 것은 아주 현저한 어형 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사냥’에서 ‘山行’이라는 의미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사냥’을 고유어로 착각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