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당나귀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말’과 비슷한 외양을 하고 있는 동물에 ‘나귀’, ‘노새’, ‘버새’ 등이 있다. 이들 ‘나귀’, ‘노새’, ‘버새’는 ‘말’과도 닮았지만, 또 상호간에도 아주 흡사하다. 그 이유는 ‘노새’와 ‘버새’가 ‘말’과 ‘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새’는 ‘암말’과 ‘수나귀’, ‘버새’는 ‘수말’과 ‘암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교배종이다. 물론 ‘수말’과 ‘암노새’ 사이에서 태어난 교배종도 ‘버새’라고 한다.

이들 중 ‘나귀’는 본래 아프리카 야생종을 길들여서 가축화한 동물이다. 이집트를 비롯하여 인도, 중국, 이탈리아, 멕시코 등 전 세계에 분포한다. ‘나귀’는 ‘말’보다 빠르지는 않지만, 위험하지 않고 또 인내심이 뛰어나다. 그러니 지난날 지체 있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교통 수단으로 아주 제격이었던 것이다.

이 ‘나귀’를 일명 ‘당나귀’라고도 한다. 이것은 ‘당’과 ‘나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그러면 ‘당’은 무엇인가? ‘당’의 정체는 ‘당’이 선행된 ‘당닭’(중국에서 들어온 작은 닭), ‘당뽕’(중국에서 나는 뽕나무), ‘당먹’(중국에서 나는 모시), ‘당면’(감자 가루로 만든 국수), ‘당목’(중국에서 나는 모시), ‘당사’(중국에서 들어오던 명주실), ‘당옴’(매독), ‘당콩’(강낭콩), ‘당항라’(중국에서 만든 항라) 등의 단어를 고려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은 ‘唐나라’의 ‘唐’인 것이다. 대상 이름 앞에 ‘唐’을 선행시킨 것은, 그 원산지나 유입지를 분명히 밝혀 다른 종류와 구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선행된 ‘당’의 의미는, ‘당나라’라는 축소된 개념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렇게 ‘당’이 ‘중국’이라는 넓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중국 역대 왕조 중 ‘당나라’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당나라’는 중국의 어느 왕조보다도 높은 문화와 문명을 누리던 문명국이었다. 그래서 ‘당나라’ 하면 중국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당’이라는 단어는 ‘당나라’나 ‘중국’이라는 의미가 아닌 ‘작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당꼬마’, ‘당닭’, ‘당고추’, ‘당삵’ 등에 보이는 ‘당’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 ‘당나라’ 또는 ‘중국’과 관련된 이들 지시물들이 우연하게도 ‘작다’ 보니 ‘당’에 그러한 의미가 덤으로 결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하여, ‘당나귀’의 선행 요소 ‘당’의 의미는 분명히 밝혀진 셈이다. 그러나 후행 요소 ‘나귀’의 정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나귀’는 15세기의 여러 문헌에 ‘라귀’와 ‘나귀’로 나온다. 그리고 16세기의 문헌에는 ‘나괴’로 나온다. 이들 중 ‘라귀’가 가장 오래된 어형으로 추정된다. 이 ‘라귀’는 아마도 중국어 차용어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어로 ‘나귀 새끼’를 ‘驢駒子’로 쓰고 ‘류구즈’로 읽는데 ‘라귀’는 ‘驢駒’ 즉 ‘류구’와 관련이 있을 듯하다.

‘당나귀’의 ‘당’이 한자 ‘唐’이고 ‘나귀’가 중국어 차용어 ‘驢駒’라면, ‘당나귀’는 ‘당나라로부터 들어온 나귀’가 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만든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