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부호의 이해

가운뎃점


양명희(梁明姬) / 국립국어연구원

쉼표의 하나인 가운뎃점은 서양의 문장 부호에는 없는 부호이다. 한글 맞춤법 문장 부호에는 열거된 단위가 대등하거나 밀접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쓰는 부호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 세부적인 규정은 다음 세 항이다.

(1) 쉼표로 열거된 어구가 다시 여러 단위로 나누어질 때 쓴다.
철수·영이, 영수·순이가 서로 짝이 되어 윷놀이를 하였다.
공주·논산, 천안·아산·천원 등 각 지역구에서 2명씩 국회의원을 뽑는다.
시장에 가서 사과·배·복숭아, 고추·마늘·파, 조기·명태·고등어를 샀다.

(2)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날을 나타내는 숫자에 쓴다.
3·1 운동 8·15 광복

(3) 같은 계열의 단어 사이에 쓴다.
경북 방언의 조사·연구
충북·충남 두 도를 합하여 충청도라고 한다.
동사·형용사를 합하여 용언이라고 한다.

(1)의 규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 번째 예만이 (1) 규정의 용례에 적합하다. 첫째, 둘째 예는 모든 어구가 쉼표로 열거될 수 없는 구조로, 가운뎃점이 사용된 것은 가운뎃점으로 연결된 둘 또는 셋 이상의 말이 서로 밀접하게 묶이는 관계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첫째 예는 ‘철수, 영이’와 ‘영수, 순이’가 각각 짝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둘째 예는 ‘공주, 논산’이 짝이 된 지역구, ‘천안, 아산, 천원’이 짝이 된 지역구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가운뎃점이 사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1)의 규정은 ‘둘 또는 셋 이상의 말이 서로 밀접하게 묶이는 관계임을 나타낼 필요가 있을 때 쓴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공동 저자임을 나타낼 때도 가운뎃점이 쓰이는데 (1) 규정에 포함시킬 수 있는 유형이다.(예:이익섭·채완, “국어문법론 강의”, 學硏社, 1999)(2)의 규정은 가운뎃점의 아주 유용한 규정으로 ‘3·1 운동, 8·15 광복’은 ‘삼일 운동, 팔일오 광복’보다 시각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 그런데 날짜를 아라비아 숫자로 쓸 때 마침표를 뒤에 쓴다는 점 때문인지(아니면 가운뎃점이 컴퓨터 자판에 없기 때문인지) 마침표가 가운뎃점 대신 쓰이기도 한다(3.1 운동). 그러나 이는 규정에는 없는 것이다.

(3)의 ‘같은 계열의 단어 사이에 쓰는’ 가운뎃점의 기능은 반점(,)이 대신하기도 하는데 반점보다는 가운뎃점을 쓰는 것이 연결된 단어가 한 단위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인도·유럽어족, 보일·샤를의 법칙’ 등의 예에서도 가운뎃점이 보이는데, 원어에서는 부호 ‘-’이 사용된 것을 ‘같은 계열의 단어’라는 개념을 넓게 적용하여 가운뎃점을 사용한 예이다.(문장 부호 붙임표 규정에 이러한 기능이 없다.) 이어진 말을 대립적으로 구분시켜 보이고자 할 때에도 가운뎃점이 사용되는데 역시 (3)의 규정에 포함하여 규정해야 한다.(예:우리는 그 일의 호(好)·불호(不好)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한편, 가운뎃점은 (1)∼(3)의 규정에는 나와 있지 않은 다음과 같은 예에서 더욱 빈번히 사용된다.

(가) 직·간접적으로, 인문·사회계, 정치·경제적, 향·소·부곡민, 확·포장, …

‘직·간접적으로’는 ‘직접적으로’와 ‘간접적으로’가 결합된 구조로, 동일한 구조의 단어가 연결될 때 마치 수학에서 인수분해를 하듯이 중복되는 부분은 생략하고 가운뎃점으로 연결한 것이다(여기서는 ‘-접적으로’가 공통 부분이다). 그러나 (3)의 규정을 적용하면 같은 계열의 단어 사이에만 가운뎃점이 오기 때문에 ‘직접적·간접적으로’ 정도로 수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문·사회계’도 ‘인문계·사회계’로, ‘정치·경제적’도 ‘정치적·경제적’으로 바꾸어야만 한다. 가운뎃점의 사용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가)와 같은 방식으로 결합된 단어가 상당수 사전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국한문, 국공채, 농어민 등).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가)와 같은 가운뎃점의 사용이 워낙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를 문장 부호 규정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