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씨 름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우리가 쓰는 ‘말’은 세 가지 정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서의 특성, 사람됨을 창조하고 또 그것을 판별하는 특성, 말하는 사람의 행동을 규정짓는 특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말의 특성을 보더라도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또 그것을 얼마나 바르고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말’을 바르고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그 말 때문에 ‘말시비’, ‘말다툼’, ‘말싸움’, ‘입다툼’, ‘입씨름’, ‘아귀다툼’ 등이 끊임없이 벌어지게 된다. 이들 ‘말’로써 행해지는 시비나 싸움은 대개 감정이 개입되어 아주 격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아주 지리하게 지속된다. 그 결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이런 싸움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인(公人)들 사이에서 벌어지면 그 한심하기가 말이 아니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런 사태를 너무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말꼬리를 잡고 연일 벌어지는 정치판의 ‘입씨름’ 공방전도 그 하나이다.
‘입씨름’이라는 단어는 15세기의 “월인석보(月印釋譜)”(1459)에 ‘입힐훔’으로 나온다. ‘입힐훔’은 명사 ‘입〔口〕’과 동사 ‘힐후-(힐난하다, 다투다)’가 결합된 ‘입힐후-’가 명사화한 단어이다.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1517)에 ‘입힐후-’가 보인다. ‘입힐후-’의 의미를 고려하면 ‘입힐훔’은 ‘입으로 따지며 다투는 일’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다. ‘말다툼’, ‘말싸움’ 등과 단어 구조는 물론 의미가 같다.
15세기의 ‘입힐훔’은 17세기 말의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는 ‘입힐흠’, 18세기의 “한청문감(漢淸文鑑)”에는 ‘입히롬’으로 나온다. ‘입히롬’은 ‘힘힘다’가 ‘심심하다’로 변한 것과 같이 ‘ㅎ’의 ‘ㅅ’으로의 변화, 그리고 ‘ㅎ’ 탈락을 거쳐 ‘입시룸’ 정도로 변하였다가 이어서 ‘ㅂ’음의 영향과 ‘ㅜ’의 ‘ㅡ’로의 변화에 따라 지금과 같은 ‘입씨름’으로 변하였다.
그런데 ‘입힐훔’의 구성 요소인 ‘힐후-’라는 단어가 없어지고 또 ‘입힐훔’의 ‘힐훔’까지도 복잡하게 변함으로써 ‘입씨름’의 어원을 알기 어렵게 되었다. 심하게는 아주 엉뚱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그 엉뚱한 해석은, ‘입씨름’의 ‘씨름’을 우리의 민속 운동인 ‘씨름〔角力〕’으로 보고 ‘입씨름’을 ‘씨름을 하듯 입으로 주고받는 공방전’쯤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씨름’은 15세기의 ‘실훔’이 변한 것이어서 ‘입힐훔’의 ‘힐훔’과는 전혀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