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로 알기

한자를 이용한 무분별한, 신어 만들기


박용찬(朴龍燦) / 국립국어연구원

신문은 신속성과 간결성을 생명으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신속성과 간결성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 소개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려면 신문의 기사를 작성할 때 오해의 소지가 없는 정확한 말만을 골라 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요즘 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신문 기사 작성자가 이러한 점을 간과(看過)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 국어사전에 올라 있지도 않은 말들을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들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학자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는 신문에서 새로이 사용하는 말들 가운데 한자어와 관련된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1) 범국민적 차원의 준법 운동을 펼쳐 범법필벌의 원칙을 정착시켜 나가기로 하고 시민 단체와 언론의 협조도 받기로 했다.
(2)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고 평화 통일을 제의해 올 경우 중국은 일국양제의 원칙에 따라 상호 협의해 통일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3) 지난 ’98년부터 외국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타고투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투수들이 몸 쪽 승부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1)의 ‘범법필벌(犯法必罰)’은 ‘법을 어긴 자는 반드시 벌한다’를, (2)는 ‘하나의 국가 내 두 체제[一國兩制]’를, (3)은 ‘타력은 강한 데 비해 투수력은 약함[打高投低]’을 가리킨다. 이들은 단어 문자인 한자의 몇 글자만을 이용함으로써 이와 같은 복잡한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나 한다. 그러나 이런 구성의 단어들은 우리말이라기보다는 한문이나 중국어 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음의 예는 앞서 제시한 예보다도 그 정도가 더 심한 경우이다.

(4) 단비에 바쁜 농심
(5) 용인 난개발 착수
(6) 北 이 달 중 濠와 복교
(7) 찬호 ‘원더풀’ 완벽투

위의 예는 신문의 기사 제목에서 뽑은 것들로, 역시 한자를 이용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쓴 것들이다. 신문의 기사 제목은 기사의 어느 부분보다도 간결성을 요한다. 이러한 간결성 때문에 위의 예와 같은 신어의 사용이 아주 흔한 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인은 이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다. 한자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자를 밝혀 주지 않거나 기사 내용을 읽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농심’은 ‘農心’을, ‘난개발’은 ‘亂開發’을, ‘복교’는 ‘復交’를, ‘완벽투’는 ‘完璧投’를 가리킨 것이기 때문이다. ‘완벽투’의 ‘투(投)’는 ‘깜짝투’, ‘완승투’, ‘완봉투’, ‘부활투’처럼 빈번하게 쓰여 이제는 거의 접미사화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마도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신문 기사 작성자는 본인의 신어 창조 능력에 자신도 크게 흡족해 했으리라. 그러나 이 말을 사용함으로써 간결성은 얻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확성은 크게 상실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예를 들어 ‘난개발’은 ‘亂開發’보다는 ‘難開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자어를 이용하여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신어는 현재 기사 제목뿐만 아니라 기사 내용에서도 자주 눈에 띈다. 이는 이러한 말들이 조만간 일반인에게도 영향을 미쳐 우리의 언어 생활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신어가 위에서처럼 부정적인 기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신어를 사용함으로써 더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의미 전달이 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단지, 신어를 만들어 쓸 때에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우리말다운 말을 만들어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