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의 어문 규범

좋은 ‘먹을거리’, 나쁜 ‘먹거리’


정희창(鄭熙昌) / 국립국어연구원

‘먹거리’는 좋은 우리말을 찾아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하고 우리말답지 못한 말을 억지로 전파해서 국어를 훼손한 경우로 꼽히기도 한다. 언어 생활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사전에서는 이 단어가 어떻게 처리되어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과 기존 사전의 처리를 비교해 보자.

(1) ‘먹거리’의 처리
표준국어대사전 'ㄱ'사전 'ㄴ'사전 'ㄷ'사전
'먹을거리'의 잘못 =먹을거리 =먹을거리 '먹거리'만 인정

기존 사전에는 ‘먹거리’가 모두 표준어로 올라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와는 달리 ‘먹거리’는 비표준어로, ‘먹을거리’는 표준어로 올렸다. 이처럼 기존 사전과는 달리 ‘먹거리’를 비표준어로 다룬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먹거리’가 사전에 오르게 된 것은 영어 ‘food’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찾던 한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이익섭, “실험관 속의 먹거리”, 새국어생활 8-2). 당시의 신문 보도(1984. 10. 10. 조선일보)에 따르면 ‘먹거리’는 ‘먹을거리’의 준말로 전라 지역에 쓰이던 말이었다. 선후 관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1982년에 나온 “민중 국어대사전(2판)”에 ‘먹거리’가 ‘먹을거리’의 경상·전라 방언으로 올라 있는 것도 ‘먹거리’가 방언임을 알려 준다. 이러한 사실은 전라 방언을 구사한 문학 작품에 ‘먹거리’가 나타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2) ㄱ. 이바지 짐을 여섯 짐이나 털어 노면 먹거리 홍수가 날 판인디, 점심 요기하자고 소 잡는 꼴이 되겄고…“그라제마는, 저 잣것들이” <송기숙의 “녹두장군”에서>
ㄴ. 갯것 해다가 먹거리를 만들어 대면서 병간을 하곤 하는 형수 우산댁이 안타깝고 짠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승원의 “해일”에서>

위 작품의 작가들은 모두 전남 장흥 출신이다. 작품의 발표 시기는 1979년에서 1982년 사이이므로 위의 ‘먹거리’는 “민중 국어대사전(2판)”에서 온 것은 아니다.
   ‘먹거리’가 방언으로, 그에 해당하는 ‘먹을거리’가 표준어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먹거리’를 인정하기 어렵게 한다. 방언이었던 말이 표준어가 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방언이 표준어를 밀어내고 널리 쓰이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먹거리’가 퍼지게 된 것은 이러한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다. 사전에서 ‘먹을거리’를 표준어로 다루고 있고 ‘먹을거리’가 자연스러운 말이라는 지적이 있음에도 ‘먹거리’가 퍼지게 된 것은 ‘먹을거리’의 존재를 몰랐거나 구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먹을거리’로 충분한데도 방언인 ‘먹거리’가 우연히 채택되었다는 점에서 ‘먹거리’를 ‘먹을거리’와 함께 표준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사실 ‘food’의 우리말을 ‘먹을거리’로 올바르게 골랐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국어의 순화나 우리말을 지키려는 노력이 소중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말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쓰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