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사고(안전한 사고?)
이준현(李埈顯) / 충주고등학교
방학식이 있는 날이면 학생들은 마냥 좋기만 한가 보다. 그러나 담임 교사는 방학 동안 학생들에게 혹시 탈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려는 학생들의 조바심을 모른 체하며 ‘방학 중 학생 생활 수칙’을 하나씩 짚어 가며 학생들에게 읽어 주곤 한다.
“위험 지역에 출입하지 않는다. 행락 질서를 지키며 수상 안전에 유의한다.”큰소리로 잘 읽어 가던 나는 ‘각종 안전 사고 예방에 노력한다.’는 항목에서 한 학생에게서 맹랑한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 안전 사고가 뭐예요? 안전한 사고란 말인가요? 사고 중에 안전한 것도 있나요?”나는 순간 당황하였다. 그 말의 뜻이 어렴풋이 잡히기는 하나 정확한 의미를 시원하게 말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빨개진 얼굴로 교무실에 돌아와 얼른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안전 사고(安全事故) (명) 공장, 광산, 공사장 등에서, 안전 수칙(安全守則)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사고.
황당한 일이었다. 그 모양새만을 본다면, ‘위험하지 않거나 위험이 없음, 또는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안전’이란 단어가 기껏해야 ‘사고’란 단어와 결합하였을 뿐인데, 그로 말미암아 뜻은 엉뚱하게도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여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안전한 지대 또는 안전을 위한 지대’를 압축하여 나타낸 ‘안전 지대’나 ‘안전을 위한 모자’를 압축한 ‘안전모’처럼 읽어 내기가 십상이다.
우리말은 표현하려는 뜻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구나 문장의 길이가 조금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단어 문자인 한자는 개개의 글자가 단어에 상당하는 단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그 의미를 압축하여 담아 내는 특성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말에서라면 구나 문장으로 표현될 것도 한자를 사용하면 단어 형태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한자의 이러한 장점과 편리함을 십분 수용한다 하더라도, 합성된 어떤 한자어가 지나치게 압축되어 있어서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 과도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 그것을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전 사고’가 그러한 경우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어설프게나마 ‘안전 사고’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① 안전 수칙, ② 지키지 않음, ③ 사고’의 세 의미소로 이루어진 것일 텐데, 이들은 각각 ‘작용(②)과 그 작용이 미치는 대상(①)’이란 관계와 ‘원인(①+②)과 결과(③)’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의미소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빠져 버린다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안전 사고’를 ‘안전한 사고’나 ‘안전을 위한 사고’로 이해하고 어리둥절해 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그러므로 어떤 단어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사고’란 의미를 제대로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의미소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형태, 즉 ‘안전 부주의 사고’나 ‘안전 수칙 위반 사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