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 지키다’군의 뜻풀이 정교화(1)
김광해(金光海) / 서울대학교
8년간의 대역사(大役事) 끝에 “표준국어대사전”이 간행됨으로써 국가가 추진한 초유의 작업이 결실을 보았다. 그러나 이 결실은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사전을 완간했다면서 새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니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 하는 분도 있겠지만, 국어 연구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발전해 간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과제 중의 하나가 사전의 표제어 하나 하나의 뜻을 정교하게 풀이하는 일이다. 모든 표제어의 뜻풀이가 더욱 정확해져야 하겠지만, 현재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의어들의 의미 차이를 섬세하게 변별해서 정의에 반영하는 일이다. 유의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실려 있으므로 한 자리에 모아 비교를 해 보기 전에는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지를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일단 이들을 모아 놓고 비교해 보면, 현재의 뜻풀이가 이른바 순환 정의와 핵심을 찌르지 못한 정의로 되어 있어서 그것만 가지고는 해당 표제어의 의미를 정교하게 기술한 것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사실 뜻풀이 작업의 실제는 첫걸음부터 난관이다. 뜻풀이를 할 때 대상 표제어보다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850∼2,000개 정도의 기초 어휘들을 정해 놓고 이 단어들만을 사용하여 뜻풀이를 하는 방법도 쓴다. 이것은 궁여지책이지만 그렇더라도 또 다시 문제가 남는다. 그 기초 어휘들의 뜻을 정확하게 풀이하는 일이 바로 또 다른 난관인데, 대상 어휘보다 더 쉬운 말을 찾기가 어려워 결국 뜻풀이를 해 놓은 부분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기초 어휘들은 굳이 뜻풀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단어, 즉 무정의어(無定義語)로 처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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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막다, 지키다’에 이끌리는 유의어군에 대하여 살펴본다. 그 예로는 ‘방어(防禦), 수비(守備), 저지(沮止), 방비(防備), 방위(防衛), 수호(守護), 방호(防護), 보호(保護), 경호(警護), 호위(護衛)’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어려운 단어들이 더 있으나, 실제 사용되는 어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 자료들에서 핵심어가 되는 ‘막다, 지키다’도 무정의어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유의어 변별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하여 추출된 결과를 제시해 둔다<표 1>. 이 표에서 뜻풀이 가운데 굵게 표시한 부분은 다른 유의어와 의미를 비교할 때의 초점이다. 이런 과정에서 괜찮은 뜻풀이를 얻게 되면 이제는 이 단어들을 도구어로 사용하여 나머지 유의어군을 보다 쉽게 정의할 수 있다.
유의어의 의미 차이를 식별해 내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이 단어들의 의미 차이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미 다 잘 알고 있지만, 그 핵심이 되는 차이점을 파악해 내고 그것을 말로 설명하는 일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유의어의 의미를 변별, 기술하는 방법으로 몇 가지 제안된 것이 있으나, 결국은 그 표제어가 적용될 수 있거나, 적용될 수 없는 다양한 용례들을 검토하여 귀납해 내는 길이 최선이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 얻어낸 ‘막다, 지키다’ 군의 유의어들에 대한 뜻풀이와 그 근거가 되는 용례를 보인 것이 <표 2>이다.
이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 하나가 발견된다. 이런 작업을 하기 전에는 의미가 비슷하고 구별이 잘 안 되므로 당연히 ‘유의어’ 또는 ‘비슷한말’이라고 부르던 말들이 이 작업을 거치고 나면 이렇게 다른 말들이 무슨 유의어냐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의미 차이가 명시적으로 드러남으로써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인데, 이러한 모순은 또한 ‘유의어’라는 애매모호한 어휘군에 지워진 숙명이다.
이 분석 결과는 하나의 시안에 불과한 결과이므로 더 검증을 받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정밀한 사전의 탄생을 위해 이런 작업이 필요한 것이라면, 국어 연구자들이나 국어사전을 관장하고 있는 국립국어연구원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다. 어떻게 생각해 본면 이 작업은 가히 국어 연구의 게놈 프로젝트라 부를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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