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둑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우리말에 “신선 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두 신선이 두는 바둑에 정신이 팔려 한없이 구경하다가 그만 도끼 자루가 썩을 만큼의 수많은 세월을 흘려보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속담이다. ‘바둑’이 얼마나 재미있는 도락(道樂)이면 두는 사람도 아니고 보는 사람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거기에 빠졌을까마는, ‘바둑’의 오묘한 맛과 넘치는 즐거움이야 무엇에 비기랴?이 신선 놀음을 드높이 예찬하고 거기여 빠져 희희낙락하는 사람은 늘어만 가지만, 정작 ‘바둑’이라는 말의 본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바둑’이라는 말은 15세기의 “금강경삼가해”에 ‘바독’으로 나온다. 이 ‘바독’이 지금의 ‘바둑’으로 변한 것은 분명한데, 그 어원이 무엇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바둑’의 어원을 ‘검은색과 흰색을 띤 바둑돌’의 준말로 이해하기도 하고, ‘돌을 배열한다’라는 뜻의 ‘배자’(排子)로부터 변한 말로 이해하기도 하나, ‘바둑’을 ‘바둑돌’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배자’가 변하여 ‘바둑’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도 없기에 이들 어원설은 신빙성이 없다.
‘바둑’에 대한 어원설로 두 가지를 제시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바독’을 중세국어 ‘받’(겉, 표면)으로부터 파생된 단어로 보는 것이다. 즉, ‘받’에 접미사 ‘-옥’이 결합된 단어라는 해석이다. 16세기 문헌인 “훈몽자회”에 보이는 ‘손ㅅ바독’(손바닥)의 ‘바독’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바독’은 바둑을 두는 넓은 판에 연유되어 명명된 단어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 어원적 의미는 ‘평평하고 넓은 판’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이 어원설은 ‘바독’의 다른 명칭으로 ‘바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설득력이 약해진다.
이보다 믿을 만한 설은 ‘바독’을 ‘밭’〔田〕과 ‘독’〔石〕의 결합으로 보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돌’〔石〕을 ‘독’이라고도 하고(경상, 전라, 충남, 제주 지역에서는 ‘돌’을 ‘독’이라 한다.), ‘바둑’을 ‘바돌’이라고도 하기 때문에(경상, 전라, 충남 지역에서는 ‘바둑’을 ‘바돌’이라고도 한다.), ‘바독’의 ‘독’이 ‘돌’〔石〕의 그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밭독’에서 ‘ㅌ’ 밭침이 떨어져 나가 ‘바독’이 되고, ‘독’이 ‘둑’으로 변하여 ‘바둑’이 되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 어원설도 ‘밭’과 ‘독’이 결합하여 지시하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것은 아닌 듯싶다.
어쨌든, ‘밭독’〔田石〕 설에 근거하면, ‘밭독’의 ‘밭’은 넓은 바둑판을 가리킬 수도 있고, 바둑판을 이루는 361개의 네모난 공간을 가리킬 수도 있다. 만약, 전자라면 ‘바둑’은 바둑판에다 돌을 놓아 자신의 집을 넓혀 가는 놀이로 이해할 수 있으며, 후자라면 ‘바둑’은 네모난 공간에다 돌을 놓아 자기 집을 짓는 놀이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집을 넓혀 가든, 자기 집을 짓든 자기 땅을 확보하는 놀이라는 점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