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붕괴, 국어 붕괴
김현중(金顯中) / 서울특별시 교육청 감사담당관실 장학사
요즈음 교육계에서는 학교 붕괴, 교실 붕괴라는 화두(話頭)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당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 수립과 대책 마련에 부산하지만, 교육의 문제는 늘 근원보다 임시 처방으로 일관해 온 우리의 교육 시책들이 만들어 낸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교육은 크게 보면 문화의 한 축이다. 이렇게 볼 때, 피교육자인 요즘 학생들의 문화를 교육자인 기성 세대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러한 붕괴 현상의 한 원인이 설명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그들과의 의사 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다.
1992년인가, 10대의 학생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에 환호할 때 기성 세대들은 오늘날의 현실을 예견하고 그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또 일본의 학교 붕괴 현상을 그저 남의 일로 방관만 했던 것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10대들 사이에 컴퓨터 통신이 일상화되면서 우리 국어가 훼손되는 현상들도 미리 생각해 두었어야 할 일이었다. 이제 10여 년이 흐른 오늘에 와서야 우리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으로 대책 마련에 야단법석이다. 그 사이에 우리 학생들이 사용하는 말은 많이 망가져 버렸다. 우선 요즘의 10대들이 부르는 노랫말을 보면 직설적이고 솔직한 표현들을 표방하면서 욕설까지 동원되는 등 자꾸만 망가져 가고 있다. 컴퓨터 통신에서 사용하는 말을 보면 국어의 규범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간판이나 광고 문구까지도 이젠 이러한 젊은이의 취향에 맞춰 규범을 지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이 사용하는 말은 기성 세대들이 예전에 은어나 비어로 분류하던 말들이 대종을 이루게 되면서, 예를 들면 자음의 된소리 경향 같은 것도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미 '매우', '대단히', '엄청'이라는 말은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들의 욕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존나 어렵다.(시험 때)'나 '졸라 멀다.(수련 활동시)'처럼 '존나' 또는 '졸라'라는 말을 쓰는데, 그들은 이 말이 원래 욕설이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과거에 조금은 불량스러운 집단에서 쓰던 '깔치'('애인, 이성친구'의 뜻)라는 말의 어근인 '깔-'이 거의 일상어처럼 쓰인다. '깔식'(애인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의식), '깔쌈하다'('멋져 보이다', '근사하다'의 뜻) 등이 그 예이다. 또 '…을 하다'라는 말 대신에 '때리다'는 말도 매우 보편화되어 있다. '공부 때리다', '휴대폰 한 통 때리다', '볼링 한 게임 때리다' 등이 그 예인데, 이 말은 '골 때리다'라는 말과 함께 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까리하다'('괜찮게 생기다'의 뜻), '중삐리'(중학생), '고삐리'(고등학생) 등을 보더라도 된소리가 얼마나 일상화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채팅에 사용되는 말에서는 한글 표기의 축약이 횡행할 뿐 아니라 받침이 거의 없어져 가고 있다. '어솨요(어서 와요)', '마니마니(많이 많이)a, '안냐세요(안녕하세요)'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한 변화는 가히 '국어 붕괴'라고 부를 만한데, 우리가 고민하는 '교실 붕괴'도 이러한 의사 소통 방식의 괴리에서 기인한 면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일찍이 이를 파악하고 사전 대책을 세웠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교실 붕괴의 모습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교실 수업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교사와 학생 간의 의사 교환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라도 우리말의 기본 줄기를 지켜 나가면서도 변화를 적절하게 수용할 수 있는 국어 붕괴 방지 방안을 찾아볼 수는 없을 것인가? 학교 붕괴, 교실 붕괴의 해결책, 즉 청소년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실마리가 이 안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