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쓰기

법원 판결문의 문장(10)

김광해(金光海) / 서울대학교

문장이 부드럽다는 것과 문장이 정확하다는 것은 서로 다르지 않다. 실제로 좋은 문장은 읽고 뜻을 이해하는 데 거침이 없고 부드럽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법원에서 생산되고 있는 판결문들에는 이런 부드러움이 없다. 문법을 따져 보면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지만 읽기에 어색하거나 이해가 잘 안 되는 문장이 많은 것이다. 이는 문장 자체가 국어로서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장을 작성할 때 단순히 문법적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이제는 이런 차원을 넘어서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쓰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번에 살펴보려는 판결문은 논지를 전개하는 데 아무런 필요가 없는 군더더기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국어로서의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을 잃고 있다. 바른 문장 작성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이 군더더기들은 대개 전문성으로 포장된 사족(?∩≡δ)이다. 판결의 논리에 특별하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사족들은 과감히 삭제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하더라도 판결 전체의 논리나 권위는 하나도 손상되지 않으며 오히려 명쾌해진다.
    다음이 이번에 논의의 소재로 삼은 판결문이다. 이 문장에서 발견된 문제점들을 이어서 지적해 본다.

원래의 판결문

<대법원, 1999.7.27. 선고99다23284 판결>

[2] 취득세나 등록세와 같은 신고납세방식의 조세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납세의무자가 스스로 과세표준과 세액을 정하여 신고하는 행위에 의하여 조세채무가 구체적으로 확정되고, 그 납부행위는 신고에 의하여 확정된 구체적 0 조세채무의 이행으로 하는 것이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그와 같이 확정된 조세채권에 기하여 납부된 세액을 보유하는 것이므로, 납세의무자의 신고행위가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로 인하여 당연 무효로 되지 아니하는 한 그것이 바로 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여기에서 신고행위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무효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신고행위의 근거가 되는 법규의 목적 , 의미, 기능 및 하자 있는 신고행위에 대한 법적 구제수단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신고행위에 이르게 된 구체적 사정을 개별적으로 파악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문 제 점

문법에 문제는 없지만 어딘가 어색한 표현이다. "~같이 신고 납세 방식을 택하고 있는 조세는"으로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다.
역시 문장을 줄글로 이어 쓰는 병폐가 고쳐지지 않고 있는 부분.
이 경우 사용할 대명사는 '그a보다는 '이a가 낫고, 문장을 끊어 주었으므로 '또한a 같은 부사를 사용하여 연결한다.
역시 부드럽지 못하며 정확하지도 않다.
'이렇게'가 더 자연스러운 대명사.
화석처럼 남아 있는 일본식 법률 문장의 잔재이다. '기(基)하여a일텐데, '근거하여, 터하여, 바탕을 두고a 등 자연스러운 표현들이 많은데 왜 굳이 이런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가?
역시 국어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지 않아 어색하게 작성된 문장. 아래 수정문과 같이 바꾸어 보면 그 의미가 한결 빠르고 쉽게 전달된다. 이 문장 뒤의 문장과 이어서 쓰는 것보다는 끊어 주는 것이 좋다.
바로 앞 부분에 나오고 있는 내용을 쓸데없이 중복시켰다. 친절이 지나쳐서 오히려 읽기를 방해한다. 간단하게 중복을 제거하여 간명하게 만들 수 있다.
이 판결문에서는 바로 이 부분이 가장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열거하고 있는 '목적, 의미, 기능a과 '하자 있는 신고 행위에 대한 법적 구제 수단a 등이 동질적으로 병렬될 수 있는 성격의 항목들이 아니다. 또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법관들끼리는 아는지 몰라도 이 글만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알 길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은 엄청난 법률 이론이라도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절이지만, 문장 작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럴듯해 보이기 위하여 공연히 무언가를 늘어놓았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사소한 지적들은 아래의 문장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위의 판결문을 감히 다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다듬은 문장

[2] 취득세나 등록세와 같 신고 납세 방식을 택하고 있는 조세는 원칙적으로 납세 의무자가 스스로 과세 표준과 세액을 정하여 신고하는 행위에 의하여 조세 채무가 구체적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이를 납부하는 행위 또한 신고에 의하여 확정된 구체적 조세 채무를 이행하는 행위이다.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는 이렇게 확정된 조세 채권에 근거하여 납부된 세액을 보유하는 것이므로, 납세 의무자 신고 행위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서 당연 무효 되지 않는 한 그것만 가지고 이를 부당 이득이라 판단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신고 행위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 삭제) 이때 이 행위가 당연무효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신고 행위의 근거가 되는 법규의 목적(, 의미, 기능 및 하자 있는 신고 행위에 대한 법적 구제 수단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 삭제)과 신고 행위에 이르게 된 구체적 사정을 개별적으로 파악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