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시 앗

조항범(趙恒範)/충북대학교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그렇게 낯설지 않은 속담이 있다.

(1) 시앗 싸움에 요강 장수: 두 사람의 싸움에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본다는 말.
(2)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 부처같이 어진 부인도 시앗을 보면 마음이 변하여 시기하고 증오한다는 말.
(3) 시앗이 시앗 꼴을 못 본다. : 시앗이 제 시앗을 더 못 본다는 말.
(4) 시앗 죽은 눈물만큼: 몹시 적다는 말.

이들 속담 속의 핵심 단어는 ‘시앗’이다. '시앗'은 '첩(妾)'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어서, 앞의 속담 속의 ‘시앗’을 ‘첩’이라는 한자어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시앗’이라는 고유어는 한자어 ‘첩’에 밀려서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시앗’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말 친족 어휘에 빈번히 결합되어 나타나는 ‘시’의 어원을 풀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시앗'은 16세기의 "순천김씨묘출토간찰"에 처음 보인다. 여기에서는 ‘시앗’이 아니라 ‘싀앗’으로 나온다. '싀앗'의 '싀'는 '싀집>시집', '싀아비>시아비’, '싀어미>시어미’ 등에 보이는 선행 요소 ‘싀’와 성격이 같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라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반면, '앗'의 경우는 별 어려움 없이 그 의미를 추정할 수 있다. '처(妻)'을 뜻하는 '갓'이라는 단어가 '싀'의 'ㅣ'에 영향을 받아 변형된 어형이기 때문이다(그것에 대해서는 후술됨).
    이렇게 보면, 지금의 '시앗'은 16세기의 '싀앗'으로, 16세기의 '싀앗'은 그 이전의 '*싀갓'으로 소급한다고 볼 수 있다. '*싀갓'에서 '싀앗'으로, 또 '싀앗'에서 '시앗'으로 변하는 과정은 음운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고개'가 '배오개'가 되듯이 선행하는 'ㅣ' 모음 뒤에서 'ㄱ'이 'ㅇ'으로 교체되거나, '믭다'가 '밉다'로 변하듯이 'ㅢ'가 'ㅣ'로 변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음운 현상이었다. '시앗'이 '*싀갓'으로 소급되고 '갓'이 '처'를 뜻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싀'의 정체만 밝혀지면 '시앗'의 어원은 쉽게 드러난다.
    '싀갓'이 '본처(本妻)'와 대립되고 '갓'이 '처와 일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싀'는 '본(本)'과 대립함을 알 수 있다. '본'과 대립하는 의미는 '부차적, 간접적, 소원한' 등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싀'는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관계가 소원한' 정도로 해석된다. 이에 따르면 '*싀갓'은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처'가 된다. '본처'와 비교해 보았을 때 '첩'은 '본처'보다는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또 부차적인 처이기에 이러한 해석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싀'를 ''의 변화형으로 보고 '신(新)'으로 해석한 다음 '*싀갓'을 '새로운 처'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싀'가 ''로 소급한다는 근거도 없고 또 아주 이른 시기에는 ''가 '싀'로 변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에는 전혀 수긍할 수 없다. 또 '싀'에서 변한 '시'에 '바깥[外]'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시'를 한자 '시(媤)'로 보기도 하나 이 또한 수긍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싀갓'의 '싀'가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면 '싀아비', '싀어미' 등의 '싀'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이들은 친정쪽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된다. 친정 부모와 비교하였을 때, '시아버지나'나 '시어머니'는 바로 그러한 존재이기에 '싀아비', '싀어미'의 '싀'를 ''[新]'로 보거나 이것이 변한 '시'를 '外'의 의미나 한자 '媤'로 보는 시각은 마땅히 교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