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판결문
<대법원, 1998.11.13. 98두734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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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① 일반적으로 행정상의 법률관계에 있어서 행정청의 행위에 대하여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는,
② 첫째 행정청이 개인에 대하여 신뢰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견해표명을 하여야 하고,
③ 둘째 행정청의 견해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데에 대하여 그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며,
④ 셋째 그 개인이 그 견해표명을 신뢰하고 이에 어떠한 행위를 하였어야 하고,
⑤ 넷째 행정청이 위 견해표명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그 견해표명을 신뢰한 개인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되어야 하고,
⑥ 어떠한 행정처분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할 때에는,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신뢰보호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위법하게 된다고 할 것이므로,
⑦ 행정처분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행정청이 앞서 표명한 공적인 견해에 반하는 행정처분을 함으로써 달성하려는 공익이 행정청의 공적 견해표명을 신뢰한 개인이 그 행정처분으로 인하여 입게 되는 이익의 침해를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경우에는 신뢰보호의 원칙을 들어 그 행정처분이 위법하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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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암호같은 글의 진의를 파악해 내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을 소모하였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도저히 그 뜻을 알 수가 없어서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독 작업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 결과 우리가 해독해 낸 이 판결의 요지를 일상적인 말로 아주 쉽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행정 관청이라고 하더라도 한번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행정 관청이 그 약속을 위반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당한 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
법조계에서 사용하는 문장이 아무리 특별한 양식이나 문체를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문장을 이렇게 작성한다면 그 내용을 곡진(曲盡)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이 문장이 보여 주고 있는 난맥상은 그런 특정한 양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수정을 해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뿐 아니라 수정할 내용 또한 심각하게 복잡하여 일일이 번호를 붙여 설명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가 난감한 글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부분 부분마다 지적하고 설명을 붙이던 종래의 방식을 피하고 몇 가지 두드러진 문제점들을 기술한 뒤 전면적으로 수정하여 다시 쓴 결과만을 제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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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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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행정상의 법률관계’ 같은 표현은 막연하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더 정확한 문장으로 바꿀 수 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요건의 나열 부분도 모두 독립된 문장으로 하나하나 분리하여 처리하는 것이 간명하다.
→ 일반적으로 행정 결정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고자 할 때 행정청의 행위에 대하여 신뢰 보호의 원칙(아마도 ‘한번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라는 뜻의 용어 같음-필자 주)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이 필요하다.
② ‘공적인 견해표명을 하여야 하고’ 같은 표현도 부정확하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뜻일 터이다.
→ 첫째, 행정청이 개인에 대하여 신뢰의 대상이 되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였어야 한다.
③ 어순도 바꾸고 부분 부분을 정확하게 다듬어야 한다.
→ 둘째, 행정청이 표명한 견해를 정당하다고 신뢰한 것과 관련하여 그 개인에게 귀책 사유가 없어야 한다.
④ 지나친 축약이며 어순도 이상하다.
→ 셋째, 그 개인은 그 표명된 견해를 신뢰하고 어떠한 행위를 하였어야 한다.
⑤ 불필요한 구절이 들어 있어 중복이 심하다. 그리고 이 문장의 마지막 어미는 정말로 이상하다.
→ 넷째, 행정청이 위에서 표명한 견해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그 견해 표명을 신뢰한 개인의 이익이 침해되었어야 한다.
⑥ 이 자리에서는 반드시 한번 끊어 주어야 한다. 앞에 나오는 네 가지 항목들을 왜 이어서 써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거니와, 이제 그 네 가지 항목이 다 끝나고 다른 논지가 이어지는데도 이를 왜 이어서 쓰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생각을 논리에 맞게 배열하는 순서에 이상이 있으며, 꼭 있어야 할 주어도 부당하게 생략되어 있다.
→ 어떤 행정 처분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면, 그 견해 표명은 신뢰 보호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부당한 것이다. 단, 이때 이 견해에 따른 개인의 행위가 공익이나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⑦ 있어야 할 접속어가 누락되어 있으며, 긴 문장이 그야말로 두서(頭緖)가 없어 난맥(亂脈)을 이루고 있다. 글이 장황한 만큼 의미를 알 수 없는 부정확한 문장이 되었으며, 쓸데없이 현학적인 표현까지 들어 있다.
→ 그러나 행정 처분이 이러한 신뢰 보호의 원칙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행정 처분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공익이 개인이 입는 손해보다 월등히 우선하는 성격의 것이라면, 신뢰 보호의 원칙을 들어 그 행정 처분이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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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에 두 번에 걸쳐 나오고 있는 ‘위법하다’(밑줄 부분)는 ' 단어는 이 판결의 내용으로 보아 ‘부당하다’는 단어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판결의 주요 내용이 특정한 실정법을 어긴 사항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신뢰 보호의 원칙’이라는 불문율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 말은 ‘위법하다’처럼 동사로 사용되지 않으며, ‘위법이다’, ‘위법이 아니다’처럼 명사로만 쓰인다.
이번에도 우리는 판결문이 어려운 것은 법리(法理)가 어려워서가 아님을 확인하였다. 제대로 된 문장을 작성해 낼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 갖추어져 있으면 법조계에서 요구하는 품위를 지키면서도 정확하고 세련된 문장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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