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판결문을 읽을까? 그러나 만약에 사람들이 판결문을 읽는다면 대개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읽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앞의 내용은 뭐가 뭔지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 마지막 부분에 ‘위반된다, 저촉된다, 효력이 없다’ 같은 말들이 나오는 걸 보니 이 판결의 요지는 위헌이라는 말이구나.” 결국, 판결문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들, 즉 판결 내용에 관한 논리라든가 법률적 소견을 펼쳐 나가는 흥미진진한 논리 전개 과정에 해당하는 부분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개 내용이 어려워서라는 것인데, 우리말로 쓰여진 판결문이 이렇게 어려워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사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법률 지식이 부족해서, 즉 판결문에 담긴 법리(法理) 전개 과정 자체가 어려워서 판결문들을 제대로 독해를 해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률이라는 분야에 잔득 주눅이 든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판결문의 문장을 검토해 보면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우리가 판결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진정한 이유는 판결문의 문장들이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 간결하면서도 바른 한국어 문장이 아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21세기가 임박한 시점에서 아직 이런 수준의 문장이 작성되고 있는 것은 결국 우리 법조계의 문장 생산 능력이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판결문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1999.5.27. 98헌바70>[한국방송공사법 제35조 등 위헌 소원]{헌공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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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① 오늘날
② 법률유보원칙은 단순히 행정작용이 법률에 근거를 두기만 하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③ 국가공동체와 그 구성원에게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역, 특히 국민의 기본권실현과 관련된 영역에 있어서는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가
④ 그 본질적 사항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⑤ 요구까지 내포하고 있다(⑥ 의회유보원칙).
⑦ 그런데 텔레비전방송수신료는 대다수 국민의 재산권 보장의
⑧ 측면이나
⑨ 한국방송공사에게 보장된 방송자유의
⑧ 측면에서 국민의 기본권실현에 관련된 영역에 속하고,
⑩ 수신료금액의 결정은
⑪ 납부의무자의 범위 등과 함께
⑫수신료에 관한 본질적인 중요한 사항이므로 국회가 스스로 행하여야 하는 사항에 속하는
⑬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방송공사법 제36조 제1항에서 국회의 결정이나
⑭관여를 배제한 채
⑮한국방송공사로 하여금 수신료금액을 결정해서 문화관광부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한 것은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된다.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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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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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체 》
이 글의 내용을 분석해 보니 ‘과거의 판례+그 판례의 논거+새로운 견해’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내용들이 조직적으로 배열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한참 들여다보면서 심각하게 독해를 해야만 비로소 내용이 파악된다. 그뿐 아니라 과거 판례의 논거에 해당하는 두 개의 안긴 문장들에도 같은 말들이 중복 사용되고 있어서 두 논거가 각각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 얼른 파악하기가 힘들다. 대수술이 필요한 글이다. |
《 부 분 》
① ‘비추어’로 끝나고 만 것이 허전하다. ‘비추어 볼 때’로 해야 자연스럽다.
② ‘않는 한’은 ‘않은 한’으로 해야 정확하다.
③ ‘-ㄴ바’의 용법으로 적절한 자리가 아니다. 두 개의 논거가 이어지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한번 끊어 주는 것이 가장 좋으나, 그대로 이어 쓴다고 하더라도 ‘-는데’ 정도가 적절한 부분이다.
④ 밑줄 친 두 부분은 앞의 논거에 이미 나온 내용들이다. 따라서 뒷부분에서는 ‘공정성’, ‘공표 금지’ 같은 말들을 중복시키지 말고 ‘금지 기간의 적절성 여부’에 초점이 맞도록 바꾸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⑤ 언뜻 지나갈 수도 있는 구절이겠지만,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부분이다. 필자의 법률 지식이 짧아 지적하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도대체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과잉금지’는 무슨 뜻인지 알겠지만 ‘과잉금지의 원칙’은 무슨 원칙인가? 혹시 ‘과잉금지 금지의 원칙’을 이렇게 적은 것은 아닌가? 또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가령,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등과 같은 ‘부정의 부정’이 겹쳐질 때 흔히 발생하는 혼란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한 부분은 아닌가?
⑥ 상투적인 표현, 좀더 정확하게 ‘이러한’ 정도로 바꾸어 주는 것이 적절하다.
⑦ 법조계에서는 현재 법률의 명칭을 이런 식으로 모두 붙여서 쓰고 있다. 어문 규범에 맞게 띄어 써야 한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이런 사실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공문을 관계 부처에 보낸 바 있다.
⑧ 문맥으로 보아 ‘타당할 뿐 아니라’로 바꾸어 적으면 한결 부드럽다.
⑨ 자연스런 국어 문장이 아니다. ‘그 결론을 바꾸어야 할 만큼 사정이 달라진 것도 아니므로’로 바꿔 보면 한결 자연스러워진다.
⑩ 이 자리에 ‘여전히’ 같은 부사를 하나만 사용해 주더라도 글 전체의 맥락, 즉 이 문장에 등장하는 전후 판결의 내용이 훨씬 긴밀하게 연결된다. |
사소한 지적은 고친 문장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이 문장을 감히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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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은 문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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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1995. 7. 21. 92헌마 177 등의 결정에서 대통령선거법 제65조에 관하여, 이 규정이 과잉 금지 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알 권리 및 선거권을 침해한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첫째,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선거의 공정을 위하여 선거일을 앞두고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선거에 관한 여론 조사 결과의 공표를 금지하는 것 자체는 그 금지 기간이 지나치게 길지 않은 한 위헌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 둘째, 우리나라의 여론조사에 관한 여건이나 기타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그 금지 기간을 선거 공고일로부터 선거일까지의 기간으로 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의 제한이라는 점 등이었다.
이러한 결정이유는 공직 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 제108조 제1항에도 그대로 타당할 뿐 아니라, 이 결정 이후 결론을 바꾸어야 할 만큼 사정이 달라진 것도 아니므로 공직 선거 및 선거 부정 방지법 제108조 제1항은 여전히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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