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수업 유감(유감)
이성구(李聖求) / 서울사대부고
다양한 사고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도입된 새 입시 제도는 국어 수업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 수학능력시험에서 교과서 지문을 도외시하다 보니 교과서 단원들이 단순한 제재로 가볍게 다루어지게 된 것이다. ‘나랏 말 미 中國( 귁)에 달아∼’로 시작되는 훈민정음도 그러하다. 수학능력시험에서 중세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단원들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다 보니 훈민정음과 같은 단원의 수업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넘어가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파생되는 우리 옛말에 대한 지식과 어휘력의 부족은 고전 문학에 대한 흥미마저도 감소시켰다. 상춘곡, 관동별곡 등을 줄줄 외우던 지난날의 학생들과 너무도 차이가 나는 요즘 학생들을 대할 때 당황하기까지 한다. 근대국어로 표기된 ‘연행가(燕行歌)’마저도 상당히 어려워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외국어보다 어렵다고 하는 학생도 있다.
현대국어를 잘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국어 교육의 목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언어가 그 나라 문화의 색인(索引)이라는 말을 상기할 때, 우리말의 옛 모습을 익힌다는 것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익히는 지름길임에 분명하다. 우리의 옛말을 모른다는 것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모른다는 것이고 이는 한국인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의 일부를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혹자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 것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세계화 시대라고 해서 세계인이 모두 똑같은 언어로 동일한 사고를 하며 살아가는 시대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화 시대를 바르게 산다는 것은 오히려 한국인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세계 문화 창조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우리 옛말에 대한 소홀함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말에 대한 애착마저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 매체에 범람하는 외국어, 국적을 알 수 없는 광고 언어, 매일같이 맞춤법이 틀린 상태로 버젓이 내보내는 텔레비전 방송 자막, 이러한 국어의 오용 속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우리 아이들, 무분별하게 이를 모방하는 우리 학생들을 대하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가 훈민정음 수업을 보다 철저히 해 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몇 해 전 훈민정음 수업 시간에는 훈민정음의 세종대왕 어지(御旨) 정도는 웬만한 학생들이면 줄줄 외웠던 것이다. 암기 교육의 효과에 대해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으나, 훈민정음에 담긴 세종대왕의 뜻이나 우리가 지금 편리하게 쓰고 있는 한글이 만들어진 경위 정도는 알아야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깨달을 것이며 나아가 우리말 사랑의 정신이 싹틀 것이라 생각한다.
세종대왕 어지의 ‘나랏 말 미 中國( 귁)에 달아∼’에는 우리 민족과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를 지켜야겠다는 세종대왕의 뜻이 확고히 드러나 있다. 얼마 있으면 또 다시 한글날이 다가온다. ‘뉴 밀레니엄 시대’라는 말이 신문과 방송에서 여과 없이 사용되는 우리 국어의 현실과 세종문화회관을 세종센터로 바꾸겠다는 얼마 전 신문 기사를 떠올리며, 우리의 얼이 담긴 우리의 말과 글의 파수꾼으로서의 국어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