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의 외래어 남용 실태

영화 제목,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정희원(鄭稀元) / 국립국어연구원

몇해 전에 ‘업 클로즈 앤 퍼스널(Up Close And Personal)’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본 후 그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라 영어사전을 뒤져 보았는데, 아무 곳에서도 설명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영어를 잘 하는 친지에게 물어보니 ‘밀착 취재’라는 뜻의 미국 속어라고 말해 주었다.
   요즘 상영되는 외국 영화들 중에는 제목만 보아서는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최근 것만 보아도 ‘딥 블루 시’,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 센스’ 같은 제목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Deep Blue Sea’, ‘The Usual Suspect’, ‘The Six Sense’가 원제로, 각각 ‘짙푸른 바다’, ‘상습 혐의자’, ‘육감(六感)’이라는 뜻을 지닌 말들인데, 영어 제목을 번역도 하지 않고 우리말로 옮겨 적어 놓기만 한 경우이다. 심지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Driving Miss Dasy)’,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 ‘데드맨 워킹(Deadman Walking)’처럼 제목 전체가 하나의 문장인 것조차도 외국어를 통째로 옮겨 적는 일이 적지 않다.
   이와 다른 경우로 이름을 잘 지어 영화의 내용을 얼른 알 수 있게 해 주는 경우도 있다. 매우 간단한 번역이지만,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제목들이 그렇다. 앞의 예들처럼 이 영화들을 원제 그대로 ‘리빙 라스베이거스(Leaving Las Vagas)’, ‘세이빙 프라이빗 라이언(Saving Private Ryan)’이라고 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간단한 수고를 들여 번역을 한 것이 매우 훌륭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것들이 돋보이는 것은 외국 영화 가운데 이 정도로 잘 번역된 제목들이 흔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외국 영화 제목을 우리말로 만드는 것은 단순히 외국어를 번역하는 것 이상의 작업이 되어야 할 때가 많다. 나라마다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구(字句)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기만 해서는 좋은 제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콘에어’란 영화가 있다. 무슨 말일까? 비행기 안에서 주는 팝콘? 원제는 ‘Con Air’로 ‘죄수’를 뜻하는 영어 단어 ‘Convicted’의 속어인 ‘Con’과 ‘Airplane’을 줄인 ‘Air’를 조합해 만든, ‘죄수 호송기’를 뜻하는 속어이다. 이것을 그저 ‘콘에어’라고 옮겨 놓으면 아무리 영화와 영어에 관심이 많은 관객일지라도 그 뜻을 제대로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를 수입하는 사람들의 우리말에 대한 무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왜그 더 도그(Wag The Dog-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뜻의 본말전도를 말함)’나 ‘콘 에어’를 무리하게 ‘본말전도’나 ‘죄수 호송기’로 번역하려고만 할 필요는 없다.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외국 영화를 영화 내용에 맞춰 국내에서 새로 작명하여 성공한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The Ghost’란 영화를 ‘유령’ 또는 ‘귀신’이라고 이름 짓는 대신 ‘사랑과 영혼’이라고 한 것이 좋은 예다. ‘워털루 다리(Waterloo Bridge)’라고 하지 않고 ‘애수(哀愁)’, ‘세 번째 남자(The Third Man)’ 대신 ‘제3의 사나이’라고 한 것도 훌륭한 번역이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정성도 많이 기울여야 한다. 외국에서 수입한 영화라 하더라도 우리말, 우리 문화를 배려한 좋은 제목들을 찾는 데 정성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케빈은 12살(The Wonder Years)’, ‘나 홀로 집에(Home Alone)’,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 Clyde)’,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The Arpartment)’,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As Good As It Gets)’ 등처럼 적절한 우리말 제목을 찾는 일에 정성을 다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더 오래 기억되는 좋은 영화가 될 것이다.